온가족이 모두 모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명절. 어른이 된 지금은 명절 마다 선물이다 교통체증이다 해서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아 마음 놓고 즐거워할 수도 없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피곤하기만 한 건 아니다. 설빔으로 산 새 옷을 차려입고 들뜬 마음으로 세뱃돈을 기다리는 조카 아이들, 오랜만에 보는 자식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고 분주한 부모님, 그리고 한가득 차려진 맛있는 음식. 필자를 기쁘게 하는 설날의 풍경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나는 건 뭐니뭐니해도 설 음식. 떡국에, 산적에, 꼬치전에, 식혜. 설날에 꼭 먹고 싶은 음식들이다.
일본에서도 설하면 음식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다. <쇼가쓰부토리(正月太り, 설에 살이 찜이라는 뜻)>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도 설에 먹는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이번에는 일본 설 음식 베스트 5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일본 설날 ‘쇼가쓰’는 언제?
음력 설을 따지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양력 1월 1일 정월(쇼가쓰)을 설로 친다. 일본도 옛날에는 구정을 명절로 지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에 태양력을 채택하며 신정을 지내기 시작했다. 한편, 지금도 오키나와 및 난세이(南西)제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구정을 축하하는 마쓰리(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한국의 설음식은 역시 떡국!
한국 설음식의 대명사는 뭐니뭐니 해도 떡국. 멸치다시를 우려낸 육수에 가래떡을 송송 썰어넣고 계란 흰자와 노른자로 만든 지단과 김을 올리면 맛있는 떡국이 완성된다.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어른들의 말에 두 그릇, 세 그릇, 하고 욕심내는 조카들의 모습이 흐뭇하기만 하다. 그밖에 맛살과 쪽파와 햄을 이쑤시게에 가지런히 꽂아 구워낸 꼬치전, 한입 먹으면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육전, 식어도 맛있는 동태포전 등등 이름만 들어도 입에 군침이 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
일본 설음식 베스트 5
일본 ‘쇼가쓰 음식’도 푸짐하기로는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쇼가쓰부토리>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일본은 1월 1일에 문을 닫는 곳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가족끼리 맛있는 음식을 해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필자도 이번 설에만 2키로에 가깝게 살이 쪘는데,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평균적으로 그 정도는 늘었다고 한다. 사람들을 살찌게 하는 그 주범은 무엇인가! 일본의 인기 설음식 베스트 5를 파헤쳐보도록 하자.(아래 순위는 필자가 지인 3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1.오세치
「매해 먹어오던 거라 그런지 오세치를 먹어야 새해 기분이 난다」
「알록달록한 음식이 한 가득 담겨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1위는 단연 오세치다. 오세치란 구이, 초절임, 조림 요리 20~30가지를 커다란 도시락통에 담아 먹는 음식이다. 음식 구성은 콩자반, 멸치 조림, 계란말이 등 일반적인 반찬부터 새우 구이, 도미 구이 등 값비싼 요리까지 다양하다. 새해에는 불을 신성히 여기어 최대한 불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새해 전에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식초에 절이거나 하여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오세치를 먹기 시작한 것은 중국에서 <명절> 개념이 유입된 나라 시대 이후로, 지금처럼 도시락통에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은 에도 시대 이후부터다. 신에게 받치는 음식임과 동시에 가족의 번영을 기원하는 엔기모노(길조를 비는 음식)여서, 오세치 요리에는 복을 가져다주는 재료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도미, 장수를 상징하는 새우, 풍년을 기원하는 멸치, 자손의 번영을 비는 말린 청어알 등이 있다. 최근에는 가정에서 만들지 않고 주문해 먹는 집도 늘고 있는데, 일본 요리가 아닌 프랑스 요리로 만든 고급 오세치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2.스시
「좋은 날 스시를 먹으면 맛도 2배 즐거움도 2배다」
「배달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간편하고 좋다」
2위에는 역시 일본 하면 떠오르는 스시가 올랐다. 연말연시에는 집에서 스시를 만들기 보다 유명 스시집에서 주문을 하거나 근처 슈퍼에서 사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새해에는 뭐니뭐니해도 느긋하게 보내는 게 최고. 식사를 마련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다. 홋카이도에는 설날이 되면 꼭 먹는 스시가 있는 데, 이름하여 ‘이즈시(飯寿司)’. 이는 쌀누룩과 생선, 채소를 통 안에 넣어 발효시킨 스시다. 겨울이 추운 홋카이도에서 옛부터 전해져온 저장식품으로, 새해의 풍물시라고 한다.
3.오조니
「새해엔 뭐니뭐니해도 떡이다」
「따뜻한 스프에 떡이 든 오조야 말로 새해 최고의 음식이다」
오조니는 간단히 말하면 일본의 떡국이다. 만드는 법은 한국의 떡국보다 간단한데, 다시물에 간장과 소금을 넣고 노란, 당근, 청경채 등의 갖은 채소를 떡과 함께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된다. 새해 첫날에 오조니를 먹는 풍습은 신과 관련이 있는데, 신을 모시는 사람이 제단에 올렸던 음식을 모두와 함께 나눠먹었던 의식에서 유래했다고. 헤이안시대부터 이러한 풍습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고,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새해 첫날 다른 축하상과 함께 오조니를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4.스키야끼
「스키야끼는 만들기 편하면서도 잘 먹었다는 느낌을 준다」
4위에는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인 스키야끼가 선정됐다. 설탕을 들이부은(칼로리를 생각하면 죄스럽지만 ‘단짠단짠’을 포기할 수 없다) 쯔유에 소고기와 채소, 두부를 넣고 살짝 익혀 날달걀에 찍어 먹는 음식인 스키야키. 스키야끼를 먹는 이유로는 맛에 실패할 일이 없고, 고급스럽지만 만드는 데 손이 덜 가 편하기 때문이라고. 고급 요리라는 인식이 있어 자주 먹는 요리는 아닌지라 새해를 축하하는 음식으로 아주 제격인 듯하다. 참고로1804년에 간행된 <요리담합집>에 간장에 절인 오리, 영양 등의 고기를 불에 달군 냄비에 구워먹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스키야끼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후 다이쇼 시대(1912~1926)에 소고기를 넣어 먹으며 이름이 스키야끼로 굳어졌다고 한다.
5.덴뿌라
「해를 넘기며 먹는 도시코시소바와 함께 먹어도 좋고, 그냥 먹어도 맛있다」
「채소 덴뿌라, 생선 덴뿌라 등등을 한가득 만들어 놓고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 즐겁다」
일본의 명물인 덴뿌라는 5위에 올랐다. 덴뿌라는 생선이나 채소에 밀가루를 뭍혀 기름에 튀겨낸 튀김요리로, 특히 좋은 일이 있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도미를 튀겨 먹는다. 그 이유는 물론, 도미가 맛이 있고 귀한 생선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도미의 일본어인 ‘타이(鯛)’가 축하한다는 뜻의 ‘오메데타이(おめでたい)’ ‘메데타이(めでたい)’의 ‘타이’와 발음이 겹치기 때문이라고. 도미 덴뿌라와 함께 갖은 채소 덴뿌라를 함께 먹으며 설날을 보내면 ‘오메데타이’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듯 하다.
그외에도
순위 밖 음식으로는 로스트비프, 샤부샤부, 사시미 등이 있었는데 모두 가족들과 함께 먹기에 편하고, 재미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회포를 풀어보도록 하자!
해당 기사는 2022년 1월 1일에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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