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도쿄와 그 주변 가나가와 가나가와 근교 [미슐랭 전직 임원의 일본 산책④]오랜 역사를 지닌 오야마 참배와 하쿠슈 지로가 살았던 고민가를 체험하다.
[미슐랭 전직 임원의 일본 산책④]오랜 역사를 지닌 오야마 참배와 하쿠슈 지로가 살았던 고민가를 체험하다.

[미슐랭 전직 임원의 일본 산책④]오랜 역사를 지닌 오야마 참배와 하쿠슈 지로가 살았던 고민가를 체험하다.

공개 날짜: 2018.10.26
업데이트 날짜: 2019.02.05

세계적인 타이어 업체 미슐랭이 일본의 유명 여행지를 소개해 주는 ‘미슐랭 그린 가이드 쟈퐁’을 제작할 당시 일본 각지를 시찰하며 돌았던 것이 바로 미슐랭에서 사장실장을 역임했던 일본인 모리타 사토시 씨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 눈높이에서 본 일본인들조차 모르는 일본의 매력을 전하는 ‘일본 산책’이 벌써 4번째를 맞이했다.

오늘 떠나볼 곳은 가나가와현 이세하라시에 있는 ‘오야마’와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하쿠슈 지로와 그의 아내 마사코가 살았던 ‘부아이소’로 LIVE JAPAN 의 독일인 직원 파멜라 씨와 함께 다녀왔다.

‘이세하라역’에서 버스로 오야마의 현관으로 이동. 오야마의 역사에 대해 알아 보자.

‘이세하라역’에서 버스로 오야마의 현관으로 이동. 오야마의 역사에 대해 알아 보자.
小田急小田原線「伊勢原駅」へは、新宿駅からロマンスカーで約1時間(1210円)

오다큐 오다하라선 ‘이세하라역’까지는 신주쿠에서 로망스카를 타고 약 1시간(1210엔)이면 닿는다. 약속 장소는 오다큐 오다하라선 ‘이세하라역’으로 정했다. 북쪽 출구에서 오늘의 동행인 파멜라 씨와 만났다.

모리타: “안녕하세요. 파멜라 씨. 오늘은 오야마로 갑니다. 오다큐 오다하라선 주변 관광지하면 아무래도 하코네가 유명하지만 오야마 역시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아주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럼 바로 산 기슭까지 버스로 이동해 볼까요?”

모리타: “우선 이 산의 역사에 대해 알려 드리고 싶네요. 오야마는 예부터 일본인들이 사랑해 온 산입니다. 항상 산정에 비구름이 드리워져 있어 ‘아메후리야마(비 내리는 산이라는 의미)’, ‘아후리야마’라고도 불렸지요. 고대인들은 이 웅장한 모습에서 신의 존재를 느꼈던 겁니다. 비는 신의 축복이기도 하고 재앙을 초래하는 원흉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조몬 시대처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일본인들은 이 산에 살고 있는 신을 극진히 모셔왔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신도의 기반이 되기도 했지요.”

파멜라: “오야마는 예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군요.”

모리타: “맞아요. 오야마에서는 자연 신앙과 신도, 불교가 혼연일체가 된 신불일체의 산악 신앙이 형성되었지요. 산정에 있는 거대한 암석을 ‘석존대관현’이라는 신으로 기리며 불교와 함께 종교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삼아왔습니다. 여기서 수도자인 ‘야마부시’가 수행을 했습니다. 이 야마부시의 위력은 당시 정치가들에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1192년에 가마쿠라에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환도(큰 칼)를 봉납해 오야마 신앙을 보호했습니다. 반대로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이 되서는 반항적이기도 했던 이 야마부시들을 전부 하산시키고 오야마데라를 진언종 ?도승을 교육하는 장소로 바꾸어버렸습니다.”

파멜라: “오늘은 오야마에 있는 오야마데라와 아후리 신사, 이렇게 절과 신사에 가는 건가요?”

모리타: “그렇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신사와 절이 분리되어 지금은 각기 따로 있지요.”

27단의 층계참과 362단의 계단으로 구성된 ‘고마 참배길’. 에도 시대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기도 했던 ‘오야마 참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가나가와 중앙교통 버스 정류장인 ‘이세하라역 북쪽 출구’에서 출발해 ‘오야마 케이블’ 정류장에서 하차. 여기서부터는 고마 참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파멜라: “길 옆으로 기념품 가게와 료칸이 있고 선도사(先導師)라고 적힌 간판이 많이 있네요.”

모리타: “이곳 오야마는 에도 시대가 되면서 서민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어느덧 관광지화되었습니다. 다들 ‘계’를 만들어 돈을 모아서는 오야마에 참배하러 가는 ‘오야마 참배’가 큰 유행이 되었지요. 에도에서 걸어서 2~3일이면 갈 수 있고 하코네라는 관문을 거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에도 시대 서민들에게는 최고의 행락지였을 겁니다. 아카사카에서 시부야, 후타코타마가와로 이어지는 246호선은 원래 ‘오야마도’라고 해서 오야마로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파멜라: “에도 시대 사람들이 246호선을 걸어서 지나온 건가요?”

모리타: “당시 서민들이 머물던 숙박시설 주인들 대부분은 선도사라고 불리었습니다. 좀 전에 설명한 것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야마부시들이 오야마에서 하산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요즘 시대로 치자면 투어 컨덕터와 같은 ‘선도사’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들은 성직자들로서 참배를 권유하거나 절과 신사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여행 후 뒷풀이에 대한 준비까지 해 주었던 겁니다.”

파멜라: “종교인들이 여행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셈이군요.”

모리타: “신도와 불도, 성(聖)과 속(俗)을 혼연일체가 된 형태로 받아들인 것 역시 일본다운 사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파멜라: “그런데 ‘계’가 무엇인가요?”

모리타: “’계’란 원래 절에 모이던 친구들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점점 다 같이 돈을 모아 서로 도와주는 모임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오야마계’를 만들어 친구들과 돈을 모아 단체로 오야마 참배를 갔던 것이지요. 오야마에는 물이나 돌과 인연이 깊은 직업이 많았는데 소방수와, 비계공, 칼을 만드는 도공(刀工)들이 ‘계’를 만들어 함께 방문했다고 합니다.”

아메후리야마 오야마데라. 폐불훼석의 역사를 배우고 토기를 던져 액땜을 하는 체험

아메후리야마 오야마데라. 폐불훼석의 역사를 배우고 토기를 던져 액땜을 하는 체험

이 참배길을 지나 오야마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오야마 케이블역’에 도착한 모리타 씨와 파멜라 씨. 여기부터는 케이블카를 타고 가다 중간에 ‘오야마데라역’에서 내린다. 우선은 아메후리야마 오야마데라에 들러 참배를 하자.

모리타: “오야마데라는 서력 755년 나라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절이다. 원래는 이 다음에 갈 아후리 신사의 시모샤(下社)가 있는 곳이었는데 1868년에 폐불훼석령 이후 1873년에 이 산의 중턱으로 이전된 뒤 1915년에 오야마데라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파멜라: “폐.불.훼.석이 뭔가요?”

모리타: “메이지 시대로 넘어가기 전 일본에서는 절과 신사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일왕을 선두로 한 메이지의 신생 정부 입장에서는 ‘일왕이 일본 신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신도가 매우 중요했지요. 그래서 신도를 일본의 종교로 만들기 위해 일부 광신적인 사람들에 의해 불상과 본당까지 전부 다 파괴된 절도 있었습니다. 이 오야마데라의 모든 불당도 당시 훼손되었습니다. 그렇게 한번 파괴된 오야마데라였지만 에도 시대부터 정착된 강한 신앙에 힘입어 이 본존 오야마부동상과 다양한 절의 보물들은 간신히 파괴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의 기부를 통해 지금 장소에 본당과 승려들이 한데 모여 수행 생활을 하는 가람(伽藍)이 재건되었습니다.”

참배를 마친 모리타 씨와 파멜라 씨는 액땜을 위해 ‘토기 던지기(가와라케나게)’에 도전했다.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원을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액땜 체험을 충분히 즐긴 모습이었다.

오야마데라
가나가와현 이세하라시 오야마 724
주변 역: 오야마 케이블카 ‘오야마 케이블역’
TEL:0463-95-2011

오야마 아후리신사에서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야마계’의 역사를 경험해 보자

오야마데라를 뒤로 한 모리타 씨와 파멜라 씨는 다시 오야마 케이블카를 타고 ‘아후리 신사역’까지 올랐다. 오야마 아후리 신사 시모샤로 이어지는 참배길 중간에 있는 찻집에 도착했을 무렵 ‘교유’ 차림을 한 씩씩한 남성들과 만났다. 하얀 교유의 칼라 부분에는 ‘메구미(め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등에는 ‘메(め)’라는 글자가 새겨진 대바구니 모양이 염색되어 있었다.

파멜라: “다 같이 이렇게 맞춰 입은 모습이 멋지네요. ‘메구미’가 뭔가요?”

남성: ‘메구미란 에도 시대에 마을에 화재가 나면 불을 끄던 소방대원들을 말합니다. 에도 시대에는 ‘이로하 48구미’라는 48개의 소방 팀이 있었는데 지금의 ‘시바’ 구역부터 ‘하마마쓰초’ 주변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메구미’였습니다. 외국인 여성 분한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 ‘메구미’는 제법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모리타: “지금도 메구미가 있군요. 오늘은 다 같이 ‘오야마 참배’를 오신 건가요?”

남성: “지금은 에도소방기념회라는 일반사단법인이 되었습니다. 매년 8월 3일이면 메구미 전원이 함께 오야마를 다녀오는 것이 에도 시대부터 300년 정도 이어져 내려온 전통입니다.”

그렇다. 모리타 씨가 오야마를 방문한 8월 3일은 우연하게도 메구미 일원들이 오야마 참배를 하는 날이기도 해서 마침 찻집에서 쉬고 있던 메구미 대원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모리타: “파멜라 씨. 좀 전에 설명한 ‘계’를 몸소 실천한 것이 바로 메구미 대원들입니다.”

메구미 대원들과 우연히 만나게 된 사실을 재미있어 하며 두 사람은 오야마 아후리 신사의 시모샤로 이동했다. 이 오야마 아후리 신사는 기원전 97년경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지금 있는 시모샤는 메이지 초기 폐불훼석 이후 새롭게 건립되었다.

모리타: “현재 오야마 아후리 신사에서 모시고 있는 신은 산의 신, 물의 신인 ‘오야마쓰미’와 천둥의 신인 ‘오이카쓰치’, 그리고 물의 신인 ‘다카오카미’다. 항상 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아메후리야마 오야마와 인연이 깊은 산, 물, 천둥의 신을 모시고 있지요.”

이 오야마 아후리 신사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환도를 봉납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그렇게 때문에 에도 시대 이후에도 큰 목도를 봉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신사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이 목도를 들어 보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파멜라: “목제라 생각보다 가볍지만 이걸 에도에서부터 걸어서 옮겼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네요.”

모리타: “이 환도를 운반하는 모습이 우키요에에도 남아있습니다. 에도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는 멋있고 세련된 환도를 봉납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 6미터, 7미터나 되는 칼을 짊어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모리타: “이곳 본전 앞에 있는 건물 지하에서는 신의 물인 어신수(御神水)가 나오는데 이 물은 마셔도 된다고 합니다. 마시면 부자가 되고 오래 살 수 있는 장수 우물로 사랑 받았다고 합니다.”

파멜라: “시원하고 맛있어요! 이게 바로 오야마의 자연이 주는 혜택이네요.”

신사를 나와 속에서 30분 정도 하이킹을 즐긴 다음 미하라다이(見晴台)에 오른 두 사람. 사가미만, 에도시마, 미우라 반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미하라다이에서 천천히 오야마의 자연을 만끽하며 그 풍경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보냈다.

오야마 아후리 신사
가나가와현 이세하라시 오야마 355
근처 역: 오야마 케이블카 ‘아후리 신사역’
TEL:0463-95-2006

오야마 명물인 두부를 사용한 건강한 펜케이크로 에너지 충전

하이킹을 즐긴 뒤 아후리신사 시모샤에서 몇 계단 내려간 곳에 위치한 리모델링 카페 ‘kurumi’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있던 찻집을 리모델링한 이 곳은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쾌적하게 맞을 수 있는 차분한 공간이다.

파멜라: “이 카페의 명물은 오야마 두부를 사용한 팬케이크인가 보네요. 오야마 두부가 뭐죠?”

모리타: “오야마에 참배를 하러 온 사람들은 선도사들에게 사례 대신 콩을 바치던 풍습이 있어 오야마에는 콩이 아주 많았지요. 이 콩과 오야마의 물을 이용해 두부를 만들게 된 겁니다.”

두 사람이 주문한 메뉴는 제일 인기가 많다는 ‘오야마 두부 펜케이크 캐러멜 퐁듀’(1100엔/세금 포함)다. 뜨거운 캐러멜 소스에 팬케이크를 찍어 먹으면 된다.

파멜라: “달고 맛있네요! 피곤한 몸에 캐러멜 소스가 퍼지는 느낌이에요.”

이 팬케이크에는 오야마의 연두부를 큼직큼직하게 으깨 넣었다. 우유 대신 수분의 70%가 두부에서 나오기 때문에 쫄깃하면서도 칼로리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몸에도 좋은 팬케이크가 아닐까. 오야마의 물을 이용해 한 잔 한 잔 내려 주는 드립 커피도 인기라고.

오야마 두부로 만든 디저트와 커피를 즐기며 휴식 시간을 즐기고 있는 두 사람.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을 내려와 가나가와 중앙교통 버스를 타고 이세하라역으로 돌아온 뒤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kurumi from woodcraft
가나가와현 이세하라시 오야마 12
TEL:0463-73-8239
영업 시간
[월~금] 9:00~16:00
[주말, 공휴일] 9:00~16:30
정기 휴일: 무휴
오다큐 오다하라선 ‘이세하라역’에서 버스로 20분. 오야마 케이블카 ‘아후리신사역’에서 걸어서 바로.

하쿠슈 지로와 그의 아내 마사코가 사랑했던 ‘부아이소’에서 이들의 미의식과 삶의 양식에 빠져들다.

오야마의 매력을 충분히 만끽한 모리타 씨와 파멜라 씨는 이세하라역에서 오다큐 오다하라선을 이용해 ‘쓰루카와역’까지 이동했다.

파멜라: “쓰루카와에는 무엇이 있나요?”

모리타: “쓰루카와는 지금은 도쿄도 마치다시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무사시국과 사가마국의 국경에 위치했던 곳입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직후부터 이 쓰루카와 지역의 고민가 ‘부아이소’에 살았던 하쿠슈 지로와 마사코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부는 이 고민가에 무사시(武蔵)와 사가미(相模)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무뚝뚝하다’와 동음이의어를 가진 ‘부아이소(武相荘)’라는 이름을 지어 살았지요. 오야마에서 약간 떨어져 있지만 이곳은 분명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파멜라: “그 부부는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모리타: “하쿠슈 지로와 마사코 부부에 대해 한 번 설명을 드리지요. 먼저 하쿠슈 지로는 1902년부터 1985년까지, 그러니까 파란만장했던 일본의 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대를 살아 온 인물입니다. 지로는 면직물 무역으로 큰 돈을 번 대부호의 집에 태어나 19세에 영국 캠브리지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1921년부터 1928년까지 9년 동안 유럽에서 머물면서 상류 사회 사람들과 교류했습니다. 귀국 후 1929년에는 가바야마 백작의 차녀 마사코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마사코도 1924년부터 1928년까지 미국 하트리지 스쿨에서 유학 생활을 한 여성이었습니다. 백작의 따님이니 당연히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랐고 청소년 시절부터 일본의 전통적인 ‘노(能)’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재적인 감식안을 가졌다고 알려진 아오야마 지로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골동품을 보는 안목도 있었습니다.”

파멜라: “다양한 교육을 받은,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부부였군요.”

모리타: “결혼 후 무역상에서 일했던 지로는 1년 중 반은 외국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이때 주영특명전권대사를 지냈던 요시다 시게루와는 24살이나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별한 사이가 됩니다.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지로와 마사코는 이곳 부아이소에 살았는데 1945년 종전 후에는 그의 능력이 평가를 받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요시다 시게루는 이후 일본의 총리대신이 된 인물로 종전 직후에는 외무대신이었습니다. 그는 지로를 종전 연락 중앙사무국 참여로 임명하고 맥아더가 원수로 있던 GHQ 와의 협상을 맡기게 됩니다. 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던 지로는 GHQ 로부터 ‘유일하게 순종하지 않는 일본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1949년 요시다 시게루 내각 당시에는 무역청 장관으로 취임하고, 1951년에는 요시다 시게루 수상의 요청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 전권단 고문으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지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산책로를 빠져 나와 입장권을 구매하자 드디어 지로와 마사코가 살았던 ‘부아이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지로와 마사코의 사위로 두 부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아이소의 마키야마 요시오 관장의 안내를 받았다.

기와로 지어진 문을 지나자 오른 편으로 과거 곡물 창고를 개축해 만든 건물이 보였다. 2층은 지로의 세계관을 재현해 낸 ‘Bar & gallery Play Fast’였다.

모리타: “이 잉글리시 펍에서 지로도 위스키를 마셨나요?”

관장: “이곳은 지로가 죽은 뒤 리뉴얼해 그의 세계관을 재현한 곳입니다. ‘Play Fast’는 골프를 좋아했던 지로가 플레이 중에 자주 쓰던 말입니다.”

모리타: “빨리 치라는 말이군요.(웃음)”

부지 안쪽에 있는 부아이소의 안채. 지금은 보기 드문 새로 이은 지붕이 운치를 자아낸다. 안채는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실제로 지로와 마사코가 사용했던 애용품과 마사코의 장서, 즐겨 입던 기모노가 전시되어 있다.

모리타: “지로가 남긴 업적도 대단하지만 이곳 미술관을 보면 마사코의 ‘미’를 꿰뚫어 보는 감식안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파멜라: “가족사진은 특별히 전시되어 있지 않나요?”

관장: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던 분들이라 그런지 가족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제 결혼식 피로연 사진에 우연히 장모님이 찍힌 사진이 한 장 있는 정도입니다. 옛날엔 이랬는데…같은 말씀도 한 번을 안 하시던 분들이었습니다.”

모리타: “따님한테는 어떤 교육을 하셨다고 하나요?”

관장: “서양인들과 만날 때에는 우선 ‘No’라고 말하라고 배웠다고 합니다. 장인어른은 자주 ‘principle’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원리 원칙을 추구하는 삶’을 중시하신 거지요. 서양 사람들과 협상할 때에는 원리 원칙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모리타: “저는 지로가 남긴 ‘전후라는 개념은 일본인이 진심으로 헌법도 민주주의도 정말로 우리의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끝난다’는 말을 진지하게 계승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직 일본은 자립, 독립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관 관장으로부터 하쿠슈 지로와 마사코에 대한 추억담을 들은 뒤 같은 부지 안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부부가 좋아했다는 메뉴를 특별히 준비해 주었다.

모리타 씨는 ‘부아이소의 해물 카레’(2100엔/세금 별도)를 주문했다. 이 카레에는 잘게 썬 양배추가 함께 나오는데 생 야채를 싫어했던 지로가 카레 루를 얹은 양배추는 즐겨 먹어 이 집에서는 카레를 먹을 때 꼭 양배추도 곁들여 냈다고 한다.

파멜라는 ‘지로의 오야코동’(2100엔/세금 별도)을 주문했다. 오야코동 역시 지로가 자주 즐겨 먹던 음식이라고.

사진은 이미지. 보통 스프가 아닌 된장국이 함께 나온다.

(이 런치 메뉴는 11~15시까지 제공된다. 11~16시 반까지는 카페 영업 시간이며 18~20시까지가 디너 시간인데 예약을 통한 코스 메뉴만 제공된다고. 자세한 내용은 부아이소 홈페이지를 확인하기 바란다.)

모리타: “이곳 부아이소에는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살기 위해 힘썼던 두 부부의 정열과 노력이 꽉 차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파멜라: “지금보다 훨씬 전에 이 정도까지 신념과 미의식을 가진 일본인이 있었군요. 이들이 지향하던 바와 라이프 스타일에는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정말로 멋진 집이에요.”

부아이소
도쿄도 마치다시 노가야 7-3-2
주변 역: 오다큐 오다하라선 ‘쓰루카와역’
TEL: 042-735-5732
개관 시간: 10:00 〜 17:00(입장은 16:30까지)
정기 휴일: 월요일(공휴일과 대체 휴일은 오픈)

Restaurant & Cafe 부아이소
TEL:042-708-8633
런치 영업 시간: 11:00 〜 L.O.(라스트 오더) 15:00
카페 영업 시간: 11:00 〜 L.O.(라스트 오더) 16:30
디너 영업 시간: 18:00 〜 L.O.(라스트 오더) 20:00
정기 휴일: 월요일

조몬 시대부터 자연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에도 시대에는 서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사가미 지역 오야마의 매력과 그 신앙의 역사에 대해 알아 보았다. 또 무사시의 ‘부아이소’에서 원리 원칙을 고수하며 살아 온 하쿠슈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던 이번 산책. 신도와 불도를 함께 종교로 믿으며 일본인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했던 순수하고 관대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아름다운 생활 양식을 고집했던 하쿠슈 부부와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상반되는 듯 어딘가 공통된 부분이 있는 일본인의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기사공개 당시의 정보입니다.
※가격과 메뉴내용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기재된 것 이외에는 모두 세금이 포함된 가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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