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을은 산과 거리가 붉고 노랗게 물드는 1년 중 가장 색채가 풍부한 계절이다. 타오르듯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가로수길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은행나무를 보면 가을이 깊어진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곱게 물든 나무들을 보며 즐기는 것을 ‘모미지가리(단풍놀이)’라 하며, 일본에서는 가을 행락철이 되면 가족, 친구들과 함께 모미지가리를 하는 것이 연례행사다.
본 기사는 일본 각지의 삼림과 자연의 명소를 3000곳 넘게 섭렵하고 현재 ‘숲 안내인’로 활약 중인 미우라 유타카 씨의 자문을 받아 일본에서 모미지가리를 제대로 즐기는 위한 팁을 소개하겠다.
모미지가리(단풍놀이)란?
일본어로 ‘단풍놀이’를 뜻하는 ‘모미지가리(紅葉狩り)’란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할 즈음 가을 야산을 산책하며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을 감상하는 행위를 말한다.
*주의: ‘모미지가리’의 ‘가리(狩り)’란 원래 ‘사냥’을 뜻하지만, 절대로 나뭇가지를 꺾어 가져가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바라보며 감상하도록 하자.
일본 열도는 남북으로 길고 표고차도 있어, 같은 지역 내라도 산 정상 부근부터 서서히 물이 들기 시작해 단풍놀이의 최적기는 제각각이다. 대체로 11월 초순부터 12월 초순 즈음에 단풍놀이를 하기 좋은 지역이 많다.
왜 일본에서는 모미지가리(단풍놀이)를 하는가?
일본에는 약 1,200종류나 되는 다양한 수목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 입는데, 여름에는 온통 녹색이던 산의 나무들도 가을이 되면 저마다 개성 있는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모미지가리는 감상하는 이들이 깊어진 가을과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동시에 겨울에 대비해 잎을 떨어뜨리기 전 마지막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나무들에게 애정을 주는 행위다. 어둡고 추운 겨울을 앞두고 따스한 느낌의 붉고 노란 빛으로 물든 나무들을 애잔하게 바라보는 일본의 풍류라 할 수 있다.
모미지가리의 역사
모미지가리(단풍놀이)의 기원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단풍을 보면서 연회를 열거나 와카(和歌/시)를 읊은 8세기 말 헤이안 시대부터 무사들이 활약한 14세기 이후의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귀족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고 한다.
모미지가리의 ‘가리(狩り)’란 원래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야산으로 계절의 초목과 꽃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수렵에 비유하여 ‘〇〇가리’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산에 있는 버섯을 채취하는 것을 ‘키노코가리’, 썰물 때 해안에서 조개를 캐는 것을 ‘시오히가리’라고 하는데, 단풍을 감상하는 ‘모미지가리’도 마찬가지다.
모미지가리가 서민들 사이에 확산된 것은 18세기 에도시대 중엽이라고 한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에서 평화로운 세상이 되자 전국의 유명 신사나 사찰을 순례하는 오이세마이리와 구마노모우데 등이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그리고 식물을 소개하는 <가단치킨쇼(花壇地錦抄)>나 사계절의 명소와 자연의 볼거리를 소개하는 가이드북과 같은 서적도 출판되었다.
일본의 가을 산에서 눈 호강! 모미지가리 즐기는 법
남북으로 약 2,000km, 길다란 일본 열도에서는 겨울에도 푸른 잎이 무성한 남방계 나무와 가을에 단풍이 들고 잎이 지는 북방계 나무가 남북으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일본에 있는 초목의 종류는 약 6,000종으로 그 수가 EU권 국가의 무려 4배에 달한다.
기본적으로 추운 지역일수록 단풍이 드는 종류가 많아 북쪽으로 갈수록 단풍명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도호쿠 지방의 너도밤나무가 생육하는 지역에서는 마치 산 전체가 불타오르는 듯한 역동적인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숲에서 단풍을 감상할 때의 포인트는 볕이 잘 닿는 부분부터 물이 든다는 것이다. 그늘 쪽은 단풍이 드는 것은 늦은 편이니 이런 점에 유의해서 관찰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일본의 모미지가리에서 주목해야 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일본의 모미지가리에서 주목해야 할 나무는 주로 2종류,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다.
단풍나무 (모미지)
단풍나무(모미지)는 단풍나무과 단풍나무속으로 식물분류상으로는 가에데와 같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많고 결각이 깊숙이 갈라진 종류의 단풍나무를 언제부터인가 이로하모미지, 야마모미지, 오모미지 등 ‘모미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밖의 종류는 가에데라고 한다.
일본의 산은 경사가 급한 사면과 계류, 바위 밭이 많은데 단풍나무는 이런 장소에서 잘 자란다. 단풍나무, 일어로 모미지(モミジ)의 어원은 ‘초목이 물든다’는 의미의 동사 ‘모미즈(もみづ)’로, 옛날에는 ‘가에데가 모미즈(단풍나무가 물든다)’, ‘게야키가 모미즈(느티나무가 물든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모미이즈(揉み出づ)’라는 동사가 변화한 것으로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자기 몸을 문지르고 비벼서 붉고 노란 색소를 짜내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는 나무를 의인화한 표현으로 일본인의 자연숭배에 대한 사상이 잘 드러난다.
은행나무 (이초)
은행나무는 세계에 단 1속 1종만 존재하는 희귀한 종으로 원산지는 중국이다. 8세기 말 헤이안 시대부터 14세기경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일본에 들여왔는데, 알고 보면 2억 년 전부터 존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다. 약 100만 년 전까지는 일본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한 번 자취를 감춘 후 중국에서 다시 들여왔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일본의 토양환경이 변화해, 특히 흙이 풍부한 숲 속에서는 은행나무의 종자가 땅 속 균류를 이겨내지 못해 자생하지 못했다. 일본의 숲에 은행나무가 적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에 가지치기에 강한 성질을 이용해 일본 각지에서 가로수로 심어졌다. 또한 수분을 대량으로 머금는 성질로 화재로부터 지켜준다고 하여 목조건물이 많은 사찰이나 신사의 경내 등에 주로 심게 되었다.
무려 30m높이까지 성장하는 은행나무는 가을에 나무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박력 넘치는 아름다움이 매력이다. 잎이 진 후에 지면을 가득 메운 황금빛 카펫도 걷는 이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생활권에서 즐길 수 있어 일본에서 매우 인기인 은행나무는 지역을 상징하는 나무로 도쿄도와 가나가와현, 오사카부의 나무로 지정되었다.
모미지가리에 필요한 촬영 Tip과 복장・준비물
단풍을 예쁘게 촬영하고 싶다면 역광을 이용하자. 곱게 물든 잎을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찍을 수 있다. 또 비가 온 후 물방울이 맺힌 잎도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뽐낸다.
모미지가리를 갈 때의 복장으로는 우선 잘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신자. 또 저녁은 쌀쌀하니 바람막이 등 여벌 옷 1벌을 더 챙겨가면 안심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돗자리를 한 장 챙겨가는 것이 좋다. 1m×2m의 크기면 충분하다. 숲 등에 들어가면 땅이 축축히 젖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잠깐 쉬어 갈 때 요긴하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 돗자리를 펼치고 뒹굴어보자. 그곳은 순식간에 ‘힐링스팟’으로 변신할 것이다.
일본의 추천 단풍명소
홋카이도
・소운쿄…다이세츠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소운쿄는 힘이 느껴지는 계곡과 그 주변을 곱게 수놓은 단풍을 즐길 수 있는 명소다. 10월 초순이 단풍의 절정기로 특히 경승지 ‘오바코’에서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바위와 붉은 단풍나무의 보기 드문 조합을 즐길 수 있다.
・조잔케이…삿포로 시내에서 전철과 버스로 1시간 거리인 조잔케이는 계곡의 풍요로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단풍명소다. 주변에 좋은 온천도 있다. 단풍의 절정은 10월 초순으로 특히 로프웨이에서 바라보는 모이와 산이 유명하다.
・오누마 국정공원…해발 약 1131m의 고마가타케 산과 그 기슭에 펼쳐진 숲은 가을이 되면 일제히 곱게 물든다. 단풍의 절정은 10월 하순경으로 숲 속과 호수를 건너는 다리, 또 절경인 석양도 즐길 수 있는 산책코스가 정비되어 걸어 다니며 여유롭게 단풍을 만끽할 수 있다.
도호쿠
・오이라세 계류…아오모리현 남부에 있는 오이라세 계류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 아름다운 단풍명소다. 절정은 11월 초순경으로 도중에 있는 폭 20m의 초시오타키 폭포가 유명하다.
・나루코 협곡…미야기현에 있는 나루코 협곡은 깎아지르는 듯한 낭떠러지의 바위 위를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채색한 단풍의 명소다. 단풍은 11월 초순이 절정으로 높이 100m의 절벽을 수놓은 단풍이 숨막히게 아름답다.
・우라반다이…후쿠시마현에 있는 반다이산 북쪽은 호수가 곳곳에 위치한 단풍명소다. 단풍은 11월 초순에 절정을 맞는다. 특히 히바라 호수는 가장 큰 호수로 그 안에 있는 크고 작은 섬과 주변 단풍이 인기를 끄는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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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Hibara, Kitashiobara-mura, Yama-gun, Fukushima, 966-0501
지도 보기 -
가까운 역
이나와시로 역 (반에쓰사이선)
버스 25분
- 전화번호 0241-32-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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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Hibara, Kitashiobara-mura, Yama-gun, Fukushima, 966-0501
간토
・닛코…도치기현에 있는 세계유산 닛코 도쇼구를 관광할 수 있는 단풍명소. 11월 초순이 절정으로 도쇼구 외에도 주젠지 호수와 게곤 폭포가 유명하다.
・다카오산…신주쿠에서 전철로 약 50분 걸리는 다카오산은 도쿄와 간토 근교에서 훌쩍 떠날 수 있는 단풍명소다. 11월 중순이 절정으로 산기슭부터 중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타면 선로 주변에 펼쳐진 단풍을 즐기면서 이동할 수 있다.
・가미코치…나가노현에 있는 가미코치는 북알프스 기슭에 있는 산악 리조트지로 단풍의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의 단풍은 11월 초순이 절정으로 특히 산들에 둘러싸인 다이쇼 연못에 단풍이 비친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간사이
・교토 아라시야마…교토를 대표하는 단풍명소 중 하나로 12월 초순경에 절정을 맞는다. 도게쓰교 배후의 산이 곱게 물든 풍경과 양쪽에서 엄습해 오는 듯한 박력 넘치는 단풍을 즐길 수 있는 호즈강 래프팅 등 가을의 다양한 표정을 즐길 수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일본인의 연례행사인 모미지가리. 그저 산과 나무가 물든 모습을 즐기는 것뿐 아니라, 계절의 변화와 단풍의 아름다움에서 무상함을 느끼는 일본인 특유의 감성이 있다. 깊어 가는 가을과 함께 모미지가리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도움을 주신 분】
‘숲 안내인’ 미우라 유타카 씨
1977년 교토시 출생. 2004년부터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약 5년간 여행한 후, 2010년부터 숲 안내인으로서 일본 전국에서 삼림과 정원을 비롯한 명소의 안내를 시작했다. 그가 지금까지 찾은 일본의 삼림과 자연의 명소는 3,000곳 이상.
저서로는 <나무 감상법>(미시마샤). 2020년부터 매주 목요일 ‘우리의 숲 살롱(みんなの森のサロン)’이라는 온라인 살롱을 동료들과 운영하고 있다. 숲과 정원은 물론 도심 속 거리에도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다.
Text by: 구니마츠 다마미(Tamami Kunimatsu)
※본 기사의 정보는 2021년 10월 취재 당시의 것을 2023년 일부 업데이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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