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승에는 참으로 가지각색의 귀신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인간을 잡아 먹거나 인간을 홀려 질투와 분노에 미치게 하거나 병이나 불행을 초래하는 무서운 요괴도 많다. 게다가 그들은 인간과 가까운 곳에 숨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후톤가부세'라는 요괴는 잠자는 사람을 이불로 졸라 죽인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무서운 요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떠돌아다니기만 하는 고독을 사랑하는 요괴가 있고, 그외에도 적극적으로 사람을 돕는 요괴도 있다. 이번에는 그런 우호적인 요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다른 세계를 꼭 즐겨보기 바란다.
자시키와라시
집 주변을 기모노 차림으로 어정버정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를 만났다면, 혹은 재가 붙은 발자국을 찾았다면 그것은 '자시키와라시'일지도 모른다. 자시키와라시가 자리 잡고 사는 집은 재산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일부러 자시키와라시를 유혹하려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자시키와라시는 겉보기도 성격도 어린아이 같아서 손님의 베개를 뒤집거나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음악 같은 소리를 내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까지나 악의 없는 장난을 칠 뿐이고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없다. 오히려 자시키와라시는 병마와 사악을 막아 집을 지켜 주는 요괴인 것이다.
단, 자시키와라시가 집을 나가고 나면 집에 갑자기 큰 불행이 닥쳐온다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도 자시키와라시가 찾아왔으면, 정중하게 다루도록 해야겠다. 가끔 과자 등을 살짝 놓아 주면 아마도 엄청 기뻐해줄 것이다.
쇼조
일본의 해안을 걷다가 몸이 붉은색이고 흐트러진 털로 덮여 있는 귀신을 만났다면 그것은 '쇼조(猩々)'일지도 모른다. 오랑우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은 바다의 정령이다. 성격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붙임성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온화한 성격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고, 오히려 술주정꾼 귀신으로 유명하다. 쇼조는 하루 종일 해변에 앉아 술을 즐기고 인간이 다가가면 술잔치를 벌이자고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또 쇼조는 주조 명인이기도 하고 도미를 원료로 최고급 술을 만든다. 그 술은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끔찍하게 맛좋게 느껴지고 그렇지 않은 자가 마시면 입이 삐뚤어질 정도로 쓴 맛이 난다고 한다. 쇼조와 함께 도미 술에 취하고 싶으면 부디 순수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을 잊지 맙시다!
오우니
오우니'는 산에 살고 있는 마녀(마귀 할멈)의 한 종류로 아주 친절한 요괴이다. 단, 그녀가 친절한 것은 상대도 친절한 경우만이다. 무주공산의 오두막집에 묵고 있다가 한밤중에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오우니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땅 바닥까지 닿는 긴 머리카락에 온몸이 털투성이라는 언뜻 보기에 그 모습은 무서워 보이지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그녀가 묵게 해달라고 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자. 그녀는 그저 앉아서 실을 잣다가 이윽고 소리도 내기 않고 떠나간다. 남겨진 수제 직물은 오우니가 보내준 감사의 선물이다.
갓파
가장 유명한 요괴 중 하나인 '갓파(河童)'는 다양한 팝컬처 속에 등장하며, 스포츠팀이나 기업 캐릭터 등에도 사용되는 사례가 많다. '물 속에 사는 어린아이'라는 뜻을 지닌 그 이름 그대로 갓파는 헤엄을 잘 치고 호수와 강에 살고 있다. 한편, 건조에는 무척 약하고 특히 정수리가 완전히 말라 버리면 목숨마저 위험해진다. 또 갓파는 인간의 내장을 좋아하며 때때로 장난의 범주를 넘어 공격할 때가 있다. 다만 두번째로 좋아하는 오이를 주는 등 존중하게 잘 대하면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원래 갓파는 붙임성이 있는 성격으로 인간과 함께 노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쓸쓸하게 보이는 어린아이를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 작물이 잘 자라도록 비를 내리게 하는 등 인간을 돕는 측면 또한 크다.
눗펫포
뚱뚱한 고깃덩어리 같은 모습인 '눗펫포'. 그 특이한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온몸에서 악취를 풍긴다. 그런데 에도 시대의 학자와 약사는 눗펫포의 살에는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어 그 고기로 만든 약을 먹으면 어떤 병이든 순식간에 나아진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많은 영주들이 눗펫포를 잡으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한 자는 없었던 모양이다.
바쿠
악몽을 먹어치워 주는 요괴 '바쿠(獏:맥)'. 머리는 코끼리, 다리는 호랑이, 꼬리는 소라는 기묘한 모습이지만, 나쁜 꿈에 시달리고 있을 때 고마운 존재이다. 악몽을 초래하는 악령은 평소 깊숙한 숲속을 떠돌고 바쿠가 있는 곳에는 다가가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만약 가까이에 가거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꿈 속에 숨어 들어갔다가 바쿠에게 강력한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바쿠는 행운과 건강을 가져다 주는 신성한 생물, 또 행운의 상징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전에는 악몽과 악령을 쫓기 위해 바쿠 무늬가 그려진 베개나 부적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묘부
묘부(命婦)'란 풍작을 관장하는 신, 즉 이나리(稲荷)의 심부름꾼인 여우의 정령으로, 행운과 행복을 초래하는 존재로 이나리 신사에 모셔진다. 묘부의 털은 신성함을 상징하듯이 하얗고 아름답다. 묘부가 좋아하는 것은 유부로, 신사에 있는 묘부 동상에 유부를 올리는 참배자도 많다. 그밖에도 신의 심부름꾼과 수호를 맡는 동물로 '고마이누(狛犬)'라는 사자와 비슷하게 생긴 개가 있다. 묘부와 마찬가지로 고마이누는 전국의 신사에서 그 땅을 지키고 있다.
하하키가미
요괴에는 우산과 제등, 주전자와 같은 일용잡화의 모양을 가진 것이 많다. 그런 요괴 중에는 서두에서 소개한 '후톤카부세'처럼 인간에게 장난치거나 해를 입히는 요괴도 있는 반면, 인간을 지켜주는 요괴도 있다. '하하키가미(箒神)' 또한 그 중 하나이다. 비의 뜻을 지닌 단어 '箒' 자 그대로 비의 정령인 그 요괴는 폭풍의 밤에 집 주변에 출몰해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춤추듯이 쓸어낸다고 한다. 강풍 속에서 낙엽을 쓸어도 별 의미가 없는데 하하키가미는 순수하게 청소를 즐긴다고 한다.
하하키가미가 재수를 비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원래 일본에서는 비는 신을 제사 지낼 때 사용되는 악기로, 부정을 정화시키는 의식에서 사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하키가미는 단지 청소를 할 뿐만 아니라 사악을 쫓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아기가 산도에서 "쓸어 나온다"는 인상 때문에 안산을 기원하는 부적으로도 여겨진다. 이외에도 비에는 이와 같은 사용법도 있다. 싫어하는 손님이 너무 오래 있을 것 같을 때 벽에 비를 걸어보자. 하하키가미가 나타나 그 손님을 집에서 쓸어 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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