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은 전통적인 면뿐 아니라 첨단 디지털까지도 그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미술에 대한 사랑이 넘쳐 일본에서의 삶을 택한 사람들은 아직도 더 많은 예술 작품들을 갈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미술이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대 미술이 에도시대의 우키요에(전통 풍속화)에서 팝 컬쳐나 만화 패널로 그냥 뛰어넘어가 버린 듯한 존재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망라하는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MOMAT)에서는 더 많은 관객들과의 소통을 위해 새로운 영어 프로그램을 신설했다고 한다. 외국인으로서 밀착 취재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갤러리 토크와 함께 이 새로운 프로그램의 내용들을 확인해 보도록 하자.
미술의 최전선에서
일본 최초의 영어 미술 감상 토론 프로그램 "Let’s Talk Art!"는 이름 그대로 미술 토론과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국적 불문, 미술 지식을 갖춘 팬들뿐 아니라 일반 관람객들까지 각자의 다양하고 세계적인 시각으로 MOMAT가 소유한 작품 컬렉션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이다.
기존의 박물관 투어와 차별화된 이 프로그램은, 미술 작품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는 토론이다.
MOMAT는 수많은 기록을 보유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일본 최초의 국립 미술관이자 일본의 문화적 상징인 황궁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만 3천 점의 방대한 자료와 중요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이 많은 소장품은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전시회를 통해 각기 다른 주제로 일본 현대 미술의 100년사를 끊임없이 조명해왔다.
많은 사람에게 현대 미술이라는 단어는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MOMAT에서는 전통 일본화부터 서양화, 이 둘이 융합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일본 현대 미술의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다. 추상화의 대표주자, 잭슨 폴록을 마주한다고 해도 당황할 필요 없다.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현대 미술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모두를 위한 미술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은 '일본의' 미술을 다루고 있기에 외국인 방문객에게는 친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각자의 문화적 관점을 가지고 일본 미술을 바라보며 토론하는 "Let’s Talk Art!"에 의미가 있다. 매주 금요일, 1시간 동안 3작품을 감상하는 긴 워크숍에는 영어가 가능한 스태프가 참여하지만, 설명을 담당하는 가이드라기보다는 토론 진행자에 가까운 역할이다.
작품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정해진다. 취재 당일 선정된 주제는 '정적과 움직임'이었다. 투어 내내 가벼운 이야기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갔으며, 사방팔방 미술로 가득한 세계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강의도 수업도 아니기에, 평가를 신경 쓸 것 없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자, Let’s Talk Art!
이 팀은 원래 나고야 출신인 Sayaka 씨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카노 호가이는 MOMAT의 컬렉션에도 포함되어 있는 일본화계의 선구자적인 존재이다.
당일에는 Live Japan 편집부의 Tim과 Cassy, 도쿄 출신 Kumiko가 함께했다. 뉴욕 출신인 Tim은 Jacques-Louis David 등의 신고전주의 마니아다. 런던 출신인 Cassy는 디지털 매체로 사실주의 초상화를 표현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Kumiko는 서양 미술, 특히 반 고흐의 붓놀림에 푹 빠진 팬이라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Samuel은 고전 불교의 조각상, 특히 운케이와 카이케이 학파의 추종자다.
우리는 이렇게 제각각 다양한 미술 취향을 가진 그룹이었으며, 도우미인 사야카를 빼면 프로 전문가라 할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시작된 뒤, 우리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이제 함께 작품을 살펴볼 시간이다. 우리는 작품에 붙어있는 설명을 읽지 않고 그 작품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느낌만을 이야기했다. 분량 관계상 전부 실을 수는 없었지만, 이어질 각 작품에 대한 우리의 감상을 살펴보기 바란다.
히시다 슌소, 참새와 까마귀, 1910
진행자 : 정답은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은 자기 스스로 정하세요. Let’s Talk Art!
Tim : 먼저 작품의 디테일이 놀라워. 멀리서 보면 심플하지만 가까이 가면 참새의 깃털을 셀 수 있을 정도고 나무 줄기의 이끼까지 표현되어 있어. 중앙에서 살짝 치우친 검은 까마귀가 시선을 사로잡네.
Kumiko : 얼핏 아무 일도 없어 보이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까마귀가 참새를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참새를 도와주고 싶어질 정도야!
Cassy : 나랑은 정 반대네! 스크린이 나누어져 있어 참새들이 나무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평화로운 분위기로 보였어.
Samuel : 중심부의 커다란 네거티브 스페이스(중심 사물을 둘러싼 주변의 여백)는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표현인 것 같아, 우린 주제를 일단 가운데 두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 작품은 근대 미술이지만 굉장히 전통적인 느낌이 들어. 1910년 이전 작품이라고 듣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야.
와다 산조, 남쪽 바람, 1907년(중요문화재)
Tim : 첫 작품과는 다르게 서양 색채가 굉장히 강하네. 작가가 고전 서양 미술과 인상주의를 공부했다는 느낌이 들어. 하지만 배경은 일본인 것 같고. 일본 연안에서 일하는 서양인을 그린 걸까?
진행자 : 정답은 없다고 하긴 했지만 사실 이건 정답이네요.
Samuel : 일단 이 시대 일본 그림치고는 드물게 유화인 데다 대상이 서구적이고 과장되어 있어서 만화같다는 느낌마저 드는데, 저 시대 그림이란 말이지. 근육질 남자는 '인왕(일본의 사찰 수호자)'같은 느낌도 들고 그 부분이 일본 작품이란 힌트일지도 몰라.
Cassy : 정말 마음에 드는 복근이야! 는 농담이고, 같은 시대인데도 이렇게 다른 일본과 서양의 회화 양식이 공존했다는 사실이 놀라워. 명암의 표현도 정말 아름답고, 그림자만 봐도 기술적으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야.
Kumiko : 시대 배경을 생각해보면 이 시대 서양 문화의 강인함과 그걸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서양 문화의 강인함을 열망했고, 작가는 유화처럼 서양식 미술 표현을 중심으로 그것을 표현해나가고싶었던 것 같아.
오기와라 모리에, 여자, 1910년
진행자 : 어떤 느낌인가요?
Samuel : 불편하네. 고통스러워 보이고, 제한되어 있고, 힘들어 보여. 청동 주물도 거칠고 마감이 부족해. 아름답다기보다는 단조롭네. 바닥도 울퉁불퉁하고...어떻게 해 주고 싶을 정도야!
Tim : 대단히 부자연스럽고 얼굴 표정에서 여러가지가 느껴져. 평온한 것 같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것 같기도 한 매우 전달력 있는 작품이야. 처음에는 그저 뭔가에 속박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Cassy : 나도. 그런데 작품의 뒷면을 보면 오히려 아니더라고. 하지만 다들 말하듯이 조각 자체는 거친 느낌이야. . 뭔가에 구속당한 것 같다는 부분에는 동의해.
Kumiko : 나는 뭔가 변화 중인 듯한, 형태가 없는 무언가에서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는 느낌을 받아. 이게 만약 움직이고 있는 도중이라 생각하면, 자유로워지고 있는 과정인 게 아닐까.
끝없는 대화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정말 할 말이 많았고, 자신의 감상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문화적 배경과 사고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것도 매우 즐겁게 들었다. 물론, 진행자는 우리가 원할 때 미술작품의 뒷얘기까지 충분한 설명을 해 주었다.
일본 문화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Let’s Talk Art!" 프로그램을 꼭 추천하고 싶다!
물론 겨우 세 편의 작품만 가지고 MOMAT 이야기를 끝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투어가 끝나면 다른 수많은 컬렉션도 꼭 둘러보기 바란다. 각각의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키워나가며 박물관과 예술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싶다면, 단순히 작품에 딸린 설명을 읽는 것보다 훌륭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친한 친구와 함께,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영어로 일본 근대 미술을 만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
근대 미술을 넘어
예술사를 통해 일본을 바라보는 취미가 있다면 올여름 문을 열 가나자와 박물관 또한 반드시 체크해야 할 장소다.
도쿄에서 고속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일본의 코게이(공예품)를 중심으로 한 박물관이다. MOMAT 근처에 있던 갤러리가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코게이의 다음 장을 펼쳐낼 것이다.
Live Japan에서는 일본의 국립 박물관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Let’s Talk Art!"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아래 링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전람회 개관 및 휴관일 등은 변경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신 개관정보는 미술관 홈페이지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Live Japan이 제공하는 일본의 국립 박물관들에 대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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