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뭘 먹으면 좋을 지 한 번쯤 고민이 되는 연말연시가 다가왔다.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과 함께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비단 우리들만이 아닌 이웃 나라 일본인들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과연 일본인들은 연말연시에 어떤 음식을 먹는 걸까? 그래서 이번에는 ‘일본인들은 연말연시에 뭘 먹지?’라는 주제로 일본 현지에 사는 일본인 5명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그럼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본 인터뷰는 한 사람당 대답할 수 있는 음식의 수를 하나로 한정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이 반영된 내용임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국에 떡국이 있다면 일본에는 ‘오조니’가 있다.
“저는 평소에도 떡을 구워서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서 오조니를 정말 좋아해요. 쭉~ 쭉~ 늘어나는 떡의 그 쫀득한 식감은 정말이지 최고인 것 같아요. 빨리 1월 1일이 되면 좋겠어요(웃음).” (S씨 / 도쿄 / 회사원 / 여 / 28세)
“이젠 오조니를 그만 먹고 싶어요. 오조니를 먹으면 한 살 더 먹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오조니를 먹는 게 조금 슬퍼지디더라고요… 하지만 떡을 좋아해서인지 매년 먹고 있습니다(웃음).” (H 씨 / 가나가와 / 주부 / 여 / 61세)
오세치 요리와 함께 일본의 대표 설음식 중 하나인 오조니. 떡이 메인인 국물 요리로 지역이나 가정에 따라 조금씩 만드는 방법이 다른 가운데 관동 지방에서는 간장 베이스의 맑은 국물을 기본으로 하고 관서 지방에서는 된장으로 국물 맛을 낸다. 주 식재료인 떡과 함께 고기, 채소, 두부, 버섯 등이 들어간다. 한국의 떡국에는 보통 쌀떡을 사용하는 데에 반해 일본의 오조니에는 찹쌀로 만든 넓적한 ‘기리모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떡의 식감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새해에 오조니를 먹고 한 살 더 먹는다는 풍습이 있다.
장수하고 싶다면 ‘토시코시 소바’를 먹아야 한다?
“저는 12월 31일이 되면 토시코시 소바를 꼭 먹어요. 일본에서는 한 해 마지막 날에 소바를 먹어야 오래 산다는 말이 있거든요(웃음).” (M 씨 / 도쿄 / 회사원 / 남 / 39세)
“저는 소바를 별로 안 좋아해서 토시코시 소바 대신 토시코시 우동을 먹습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토시코시 우동을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데 우동면처럼 굵직하고 길게 살고 싶은 사람이 많은 듯 합니다(웃음).” (K 씨 / 오사카 / 대학생 / 남 / 23세)
“저희 가족은 토시코시 소바를 먹을 때 온소바로 먹어요. 냉소바도 맛있지만 겨울에는 역시 따뜻한 국물이 최고죠.” (T 씨 / 오사카 / 서비스업 / 여 / 37세)
12월 31일이 되면 일본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토시코시 소바’를 먹는다. 일본어의 ‘토시코시’는 ‘해를 넘기다’라는 의미로 소바의 긴 면과 같이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밖에도 소바(메밀)면이 잘 끊어진다 하여 한 해의 나쁜 기운을 전부 끊어 버린다는 설도 있고 건강 식품인 소바를 먹고 몸 속을 좋은 기운으로 채운다는 설도 있다. 필자 또한 일본에서 거주할 때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토시코시 소바를 먹으러 가까운 소바가게에 찾아가곤 했었다. 연말이 되면 일본에서는 여기 저기서 토시코시 소바가 판매되고 있는데 필자가 직접 먹어 본 바로는 평상시 먹는 소바와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식재료나 요리 방법이 다른 소바 라기 보다는 한 해 마지막 날에 먹는 소바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일본의 대표 명절(설) 요리 하면 바로 이것 ‘오세치 요리’
“설연휴 하면 역시나 오세치 요리죠. 음식 종류도 많고 이 때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어요(웃음)” (T 씨 / 오사카 / 서비스업 / 여 / 37세)
“저희 집은 새해가 되기 전부터 미리 식재료를 준비해서 요세치 요리를 만들어요.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정성이 아니겠어요?” (H 씨 / 가나가와 / 주부 / 여 / 61세)
“솔직히 저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새해가 되면 가족들이 먹으니까 함께 먹어요. 명절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그건 좋은 것 같아요(웃음).” (K 씨 / 오사카 / 대학생 / 남 / 23세)
일본인들 중에서도 오세치 요리의 종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오세치 요리는 ‘이와이자카나’, ‘구치토리’, ‘야끼모노’, ‘스노모노’, ‘니모노’ 이렇게 총 5종류로 분류할 수 있으며 어묵, 검은콩, 구리킨톤(밤과자), 청어알, 우엉볶음, 새우, 생선구이, 홍백 나마스(고기 및 생선의 날요리), 조림음식(토란, 연근, 당근 등) 등과 같은 좋은 기운을 담은 음식들을 네모난 찬합에 예쁘게 담은 요리를 말한다. 보통 새해에 먹는 명절 음식으로 지역에 따라 음식의 종류나 수는 조금씩 달라진다. 필자는 수년 전 일본에 거주했을 당시 음력 1월 1일(구정)을 맞아 일본인 지인으로부터 오세치 요리를 대접받은 적이 있다(참고로 일본은 양력 1월 1일 신정을 쇤다). 맛도 맛이지만 직접 만들어 준 정성에 감동했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옛날에는 직접 만들었지만 요즘은 백화점이나 전문점에서 예약 주문을 해서 먹는 경우가 많으며 서양풍 창작 오세치 요리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연말 연시 집에서 먹는 귤 맛은 그야말로 꿀맛!
“따뜻한 고타츠 안에 발을 넣고 ‘홍백가합전’(연말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먹는 귤맛은 정말 꿀맛이에요! 먹다 보면 금세 몽땅 사온 귤이 바닥이 난다니까요(웃음).” (K 씨 / 오사카 / 대학생 / 남 / 23세)
“연말연시에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밤 늦게까지 보다 보면 배가 고플 때가 있어요. 밤이라서 살찔 까봐 뭘 먹기도 두렵고… 그 때 저는 제가 좋아하는 딸기를 먹습니다. 당분이 있어서 살이 전혀 안 찌지는 않겠지만 야식보다는 낫겠죠(웃음).” (T 씨 / 오사카 / 서비스업 / 여 / 37세)
연말 연시에 먹는 음식으로 제철 과일이나 채소가 답변으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필자 또한 어린 시절 따뜻한 방에 엎드려 연말 가요 프로그램이나 특선 영화를 보면서 귤을 야금야금 까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추운 겨울 집에서 편히 쉬면서 귤이나 딸기를 먹는 것도 연말 연시를 즐겁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말 연시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게 최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적 나베 요리를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해요. 따끈한 국물이 몸 속까지 녹여주는 것 같아요.” (H 씨 / 가나가와 / 주부 / 여 / 61세)
“야키니쿠(고기구이)는 언제 먹어도 맛있는데 연말연시에 먹으면 더욱 특별한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 생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데에는 야키니쿠보다 좋은 건 없죠.” (K 씨 / 오사카 / 대학생 / 남 / 23세)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한 제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저는 초밥을 선택합니다. 평소에 잘 가지 못하는 고급 초밥집에서 저를 위한 파티를 열어 주는 거죠(웃음).” (S씨 / 도쿄 / 회사원 / 여 / 28세)
일본인들은 연말연시에 대표 음식 이외에도 그 밖의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선호하는 듯 하다. 필자 또한 연말 연시 라는 특수성과 별도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즐겨 먹는 편이다. 역시나 특별한 날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가장 특별한 음식이 아닐까.
지금까지 ‘일본인들은 연말연시에 뭘 먹지?’라는 주제로 그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연말 연시 기분을 느끼기에 대표 음식보다 좋은 것은 없겠지만 한 해를 뒤돌아 보고 희망찬 새해를 바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무병 장수를 기원하며 먹는 토시코시 소바는 어떤 맛일까? 그 맛은 당신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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