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살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와 얼굴색이 비슷하고 그나마 비슷한 문화권인 이웃나라 일본도 예외는 아닌 가운데, 실제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어떤 점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번에는 일본 거주중인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일본에 와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주제로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그럼 이들이 적응하지 못한 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필자의 지인 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 반영된 내용임을 참조하기 바란다.
금연석인데 담배 냄새가..
흡연자가 아닌 비흡연자들은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에서 적지 않은 담배 연기를 마셔야 한다는 고충을 털어 놓았다. 일본은 금연석이 없는 걸까?
“직장 동료들과 카페에 가면 항상 저는 괴로워요. 제가 비흡연자인 걸 알고 흡연자인 동료들도 저를 배려해서 함께 금연석에 앉기는 하는데… 흡연석의 담배 연기가 금연석으로 흘러 들어와 너무 싫어요.”
(L 씨 /직장인 / 여 / 33세)
“담배 냄새가 싫어서 담배를 끊은 지 3년이 다 되어 가네요. 평소에는 담배 연기를 맡을 일이 없지만 회식이 있는 날에는 그동안 맡지 않은 담배 냄새를 한꺼번에 다 맡는 기분이에요. 일본은 아직도 술집에서 담배가 허용되는 곳이 많아 즐거운 회식 자리가 가끔 꺼려질 때도 있습니다.”
(K 씨 / 직장인 / 남 / 37세)
음식점이나 카페를 시작으로 열차 안, 전철 플랫폼, 택시 안 등등, 어디서든 쉽게 담배를 필 수 있는 환경이었던 일본도 약 10년전부터 국민 건강과 함께 담배 연기 없는 쾌적한 도시 만들기에 힘쓴 결과, 지금은 전면 금연 건물이나 금연 음식점, 금연 카페 등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흡연이 가능한 술집이나 음식점, 카페가 많이 남아 있으며 금연석과 흡연석이 나뉘어 있다고는 하나 흡연 부스의 미설치나 따로 분리된 밀폐식 흡연석이 아닌 칸막이로 나뉜 곳이 많아 비흡연자들에게 있어서는 적응하기 힘든 일본 생활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듯 하다.
겨울철에 고다츠는 필수!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겨울이 되면 이구동성 한국이 그리워진다고 한다. 왜 그런 말들을 하는 걸까?
“서울 보다 비교적 따뜻한 겨울 날씨의 도쿄지만 전 정말 매년 겨울이 되면 한국이 그립습니다. 바닥을 따뜻하게 데워서 방 전체가 온기로 훈훈해지는 한국의 난방 시설과 달리 일본은 전기 난로나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난방기가 대부분이어서 건조해지기도 쉽고 전기세 절약을 위해 난방기를 끄면 금세 추워져요.”
(H 씨 /대학생 / 남 / 25세)
“저는 겨울이 되면 바닥이 찬 게 너무 싫어서 전기 매트와 고타츠를 구입했어요. 그래서인지 작년에는 비교적 따뜻한 겨울을 보내긴 했지만 방 공기가 찬 건 정말 싫어요.”
(K 씨 /직장인 / 남 / 37세)
한국에 온돌이 있다면 일본에는 다타미가 있다. 습, 냉기 조절에 탁월한 다타미는 여름철에 습기를 빨아들이고 겨울철에 바닥이 차가워 지는 것을 방지해준다. 하지만 바닥을 따뜻하게 데우는 보일러 난방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다타미 방이나 일반 마루 바닥에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유카단보’(일본식 온돌 난방)가 설치되어 있는 주택도 늘어나고 있으며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고타츠’(테이블 사면이 이불로 덮힌 적외선 난방 기구) 라는 난방 기구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추운 겨울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그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것이 아닐까.
직장 동료나 친구 사이에서도 지켜야 할 룰이 있다
친구를 사귀거나 친구 사이에 있어서 한국과 조금은 다른 점을 느꼈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과연 어떤 점들이 우리와 다른 것일까?
“대학에 들어가서 일본인 친구를 몇 명 사귀었어요. 하루는 심심해서 밤에 생각 없이 전화를 걸었는데… 조금 당황한 내색을 하더라고요.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냐는 거죠. 그 친구는 혼자 살기도 했고 저는 정말 친하다고 생각해서 편하게 전화한 것 뿐인데… 밤 10시쯤 이었을 거예요. 좀 늦은 시간에 전화한 저도 실례된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런 반응이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H 씨 / 도쿄 / 대학생 / 남 / 25세)
“일본인들은 약속 잡는 것이 조금 복잡하다고 해야할까요? 약속을 미리 하지 않으면 당일 만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아요. 미리 스케줄을 짜서 계획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친한 친구나 직장 동료 사이라면 가끔은 그날 기분에 따라 즉각적으로 약속을 잡아 밥을 먹거나 술 한잔 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마침 상대(친구)도 시간이 나서 당일에 약속을 잡은 적도 있긴 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적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K 씨 / 직장인 / 남 / 37세)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 사이에 허용된 암묵적인 룰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룰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한국에서는 친구라 하면 ‘편한 존재’, ‘뭐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 등으로 여겨지지만 일본에서는 친구 사이라도 조금은 더 상대를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는 느낌이다. 단, 정말 친한 사이가 되면 한국인 못지 않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밥 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먹어야 한다고?
쌀과 면이 주식인 일본인들의 식문화는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른 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네요. 친구가 집으로 초대를 해서 친구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 경험이 있는데요. 저만 빼고 모두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거예요. 왜 한국에서는 밥 그릇은 식탁 위에 두고 숟가락으로 먹잖아요. 지금이야 저도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먹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는 한국 스타일로 먹는 것이 편하긴 합니다(웃음).”
(L 씨 / 오사카 / 직장인 / 여 / 33세)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가라아게(일본식 닭튀김)가 맛있다며 직장 동료가 젓가락으로 저에게 주려는 것을 제가 젓가락으로 받으려 하니 그럼 안된다며 접시 위에 올려 주더라고요.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고 화장할 때, 뼈를 젓가락과 젓가락으로 옮긴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K 씨 / 가나가와 / 직장인 / 남 / 37세)
넙적한 접시에 담긴 카레나 걸쭉한 ‘오지야’(일본식 죽), ‘시츄’(스튜) 등을 제외하고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밥은 젓가락으로 먹고 국도 숟가락으로 떠 먹는 것이 아닌 국그릇을 들고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오차즈케(육수에 밥을 말아 먹는 일본식 요리)마저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마시다시피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의 젓가락 문화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 예외도 있다. 그 밖에도 밥에 젓가락을 꽂아 두어서는 안 되고(장례식장에서 하는 행위) 면을 먹을 때는 후루룩 소리를 내서 먹어야 하는 등(요리를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 표시), 우리와 다르면서도 재미있는 식문화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는 제스쳐를 잊지말자!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방 말의 내용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 일본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반응을 하는 걸까?
“하루는 일본인 친구가 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 하여 열심히 들었는데, 솔직히 별로 재미 없었어요. 그래서 재미 없다고 말했더니 다음부터는 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사실 제 반응이 조금 무성의 하긴 했지만 재미 없는 걸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H 씨 /대학생 / 남 / 25세)
“회사 여직원들끼리 식사를 할 때면 저는 조금 긴장을 합니다(웃음). 상대방이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공감 표시를 제대로 안하면 일본에서는 예의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좋든 싫든 그냥 형식적으로 공감 표시를 할 때가 많아요. 이야기에 집중이 안 될 때는 가끔 무언으로 일관할 때도 있습니다(웃음).”
(L 씨 /직장인 / 여 / 33세)
‘소우데스요네’(맞아요), ‘혼또데스까’(정말요?), ‘요깟따데스네’(잘됐네요) 등등 일본인들은 상대방이 이야기를 할 때, 상황에 따라 다양한 공감 표시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공감 표시를 하는 것에는 다를 바 없으나 일본인들의 공감 표시는 좀 형식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즉 상대에 대한 하나의 예의인 셈이다. 그리고 ‘오세지, 샤코지레이’(겉치레 말) 또한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어느정도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어 일본에서 생활을 하는 한국인들에게 조금은 애로 사항으로 다가온 듯 하다.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한다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식사 보다는 혼자 하는 식사가 좋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한 번 들어 보도록 하자.
“제가 성격이 좀 급한 편이라서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해요. 그래서 혼밥할 때는 절대 웨이팅하는 곳은 가지 않죠(웃음). 그런데 문제는 친구들과 식사 할 때에요. 일본인들은 기다리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라멘 한 그릇 먹으려고 친구들과 함께 1시간이나 기다린 적이 있어요.”
(H 씨 /대학생 / 남 / 25세)
“나름 미식가여서 맛집을 찾아 다니는 편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기다리는 것에도 익숙한 편인데… 일본은 맛집이 아니어도 기다리는 곳이 많은 것 같아요. 또 그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가끔은 혼자 먹고 싶을 때도 있어요.”
(L 씨 /직장인 / 여 / 33세)
TV나 잡지, 유명 블로거가 소개한 맛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선 필히 줄을 서는 각오는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맛집이건 그렇지 않건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는 행동은 지극히 일상적이다(물론 웨이팅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많다). 이처럼 기다리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식사가 때로는 즐겁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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