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초’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요코초란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등 음식점이 줄지어 있는 길로 한국으로 따지면 ‘골목길’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코초는 일본 직장인들의 오락의 장이지만 최근에는 젊은 세대와 여성,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그 분위기를 즐기러 찾고 있다.
한 마디로 요코초라고 해도 다양한 곳이 있으며 한 번에 모든 곳을 가볼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 요코초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몇몇 요코초의 분위기와 특징을 소개한다.
요코초의 역사
현재 남아 있는 요코초는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 ‘암시장’이 들어섰던 곳이다.
당시 식량난이 심각했던 일본에서는 정부가 국민에게 충분한 양의 식량을 배급할 수 없었다. 그 때 암시장은 마치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암매상들은 자체적인 비밀루트를 통해 식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물자를 조달하여 도쿄를 비롯한 식량이 부족한 도시로 유통시켰다. 이것이 지금은 그 모습이 몰라보게 바뀌었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요코초의 기원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우에노의 아메야 요코초도 그 중 하나이다. 지금은 신선식품과 가공식품뿐 아니라 의류, 신발, 케밥 등 다양한 물건이 넘쳐나지만, 그 탄생의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직후의 식량난이 있었다.
한 때 우에노역 부근에서는 하루 평균 2.5명의 아사자가 나올 정도였는데, 만주와 시베리아로부터 귀환한 병사들이 모여 주로 당시 귀했던 단 맛이 나는 ‘이모아메(고구마엿)’를 비밀루트를 통해 팔게 되었다. 이것이 아메요코라고 불리게 된 유래 중 하나로, 수 많은 사람을 식량난으로부터 구한 ‘암시장’이다.
신주쿠 직장인들의 오아시스 오모이데 요코초
신주쿠역 서쪽 출구의 한 켠에 자리잡은 오모이데 요코초는 종전 직후인 1946년경 전쟁의 피해로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던 신주쿠는 사람과 물자가 지나가는 길목이 되어 사람들은 각자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도 남아 있는 ‘오모이데 요코초’이다.
이곳을 찾았을 때는 야키토리와 곱창 등을 파는 입식 주점(서서 마시는 술집)이 늘어서 있었지만 낮 시간대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가게들도 오픈 준비 중이었다. 그 외에도 사진 촬영을 즐기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퇴근 시간 즈음해서 다시 한 번 오모이데 요코초를 찾아봤다.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주변 어느 가게를 둘러봐도 퇴근길에 동료와 함께 들른 샐러리맨이나 혼술을 즐기는 샐러리맨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신주쿠는 오피스 빌딩이 많은 곳이라 하루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들르기 쉽다는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연령대도 50~60대가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곳의 이자카야는 옛날 분위기를 그대로 남긴 것도 그 인기의 비결인 듯하다. 밤이 되면 가게 앞 등에 불이 들어오고 요코초의 분위기에 화려함이 더해졌다. 이자카야가 꽤 많아 각자의 취향에 맞는 곳을 찾으면서 돌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도심 속에서 쇼와시대로 시간여행 논베 요코초
시부야역 하치코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결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 논베 요코초. 이곳의 정식 명칭은 ‘시부야 도요코마에 음식가 협동조합’이다. 전후 먹고 살기 위해 시부야역 주변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 그 시초로 현 도큐 혼도오리와 시부야역 앞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지금의 논베 요코초로 모이게 되었다.
이 곳의 특징은 쇼와시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물론 들어선 가게들의 규모가 아담해 대여섯명의 손님만 들어서면 가득 찬다는 점이다. 낮 시간대에는 역시 영업을 하는 가게가 거의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이 요코초의 안쪽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야간에 다시 한 번 찾으니 불을 밝힌 논베 요코초는 대낮의 소박함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결코 많지 않은 가게 안을 들여다 보니 어깨가 닿을 듯 비좁게 앉은 손님들이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고객층은 60~70대로 오모이데 요코초보다 살짝 연령대가 높은 편이지만 야키토리 같은 서민적인 메뉴뿐 아니라 비스트로나 칵테일을 내놓는 가게도 있어서인지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모였다.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일본 특유의 풍경을 촬영하거나 가게 안에 들어가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아지트’란 인상이 강해 단골손님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온기가 느껴졌다.
기치조지 변화하는 현대식 요코초 하모니카 요코초
기치조지역 북쪽 출구를 나서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모니카 요코초의 간판이다. 하모니카 요코초는 ‘헤이와 도오리’, ‘다이야가이’, ‘무사시 도오리’와 마주보는 곳에 위치하며, 기치조지역쪽에서 보면 ‘나카미세 도오리’, ‘주오 도오리’, ‘아사히 도오리’, ‘노렌 고지’, ‘쇼와카이 도오리’ 등 다섯 갈래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하모니카’란 명칭은 입구 폭이 좁은 상점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마치 하모니카의 구멍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야키토리(닭꼬치), 구시야키(꼬치구이)와 중식, 비어바, 다이닝바 등 음식점뿐 아니라 생활잡화 등 매우 다양한 가게가 있어 낮 시간대부터 젊은 커플과 유모차를 끄는 여성, 사진촬영을 하는 이들로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다. 모이는 연령대도 다양하고 활기찬 곳으로 테이크아웃을 해서 먹으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한 이 요코초의 특징은 젊은 세대들의 수요를 반영해 세련된 분위기의 레스토랑도 많지만 골목 자체의 분위기는 쇼와시대의 감성을 그대로 남겨 신비스러운 느낌까지 자아낸다는 점이었다.
해가 저문 후 하모니카 요코초를 찾으니 낮에 손님이 거의 없던 입식주점 등에 퇴근길에 가볍게 한 잔 하러 들른 샐러리맨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치조지는 다른 요코초에 비해 주변에 고층빌딩이 적어 퇴근길에 들른 샐러리맨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 대신 밤 시간에도 대학생 등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가게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기치조지는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나 영화관, 동물원,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 귀가 전에 가볍게 들르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낮 시간대부터 즐길 수 있고 주변에도 볼거리가 많아 하루를 보내기에 좋은 곳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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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치조지 하모니카 요코초吉祥寺 ハーモニカ横丁
- 주소 1~2 Kichijoji Honcho, Musashino-shi, Tokyo, 180-0004 우) 180-0004 도쿄도 무사시노시 기치조지혼초 1초메~2초메
요코초 탐방 총정리
이번에 소개한 세 곳의 요코초는 쇼와시대 특유의 분위기가 남아있어 그 시대를 살아 온 세대들이 향수를 느끼고 많이 찾는 곳이지만 각자 다른 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오모이데 요코초와 논베 요코초는 연령대가 높고 야키토리나 오뎅 등 옛 향수를 자극하는 일본의 소울푸드를 내놓는 가게가 대부분이지만, 하모니카 요코초는 비어바와 다이닝바, 스페인 식당 등 모던한 가게도 많았다. 이런 차이는 요코초 주변지역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신주쿠에 위치한 ‘오모이데 요코초’는 오피스 빌딩이 많아 직장인이 많고, 기치조지의 ‘하모니카 요코초’에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오락시설이 많아 젊은이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각 요코초의 태생은 같지만 요코초 특유의 분위기를 간직하면서 각자 위치한 장소에 맞게 변화하며 꿋꿋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요코초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들르는 사람들이 만든 것일지 모르겠다. 일본을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요코초’에 꼭 한번 들러보길 바란다.
메인 사진:URAIWONS /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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