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 녹차문화가 이룩된 과정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자.

녹차 – 녹차문화가 이룩된 과정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자.

Update: 2017.04.25

녹차는 서양 많은 나라들, 찻집, 오가닉 전문점의 슈퍼마켓등에서도 취급하는 등 현재의 ‘녹차’에 대한 지명도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왔다. 녹차가 어떤식으로 그 역사를 시작하였는지, 지금까지 전해지는 일본의 전통문화의 하나인 "다도"는 어떤식으로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곳곳의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밀접하게 존재하기까지 발전하게 된것일까? 에 대해 알아보려한다.

근래 서양 쪽에서는 녹차가 디톡스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녹차 =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자동판매기, 편의점등에서 많이 취급되어 일상적으로 소비되고있지만 아직까지 해외에서는 녹차의 인식이라고 하면 건강에 좋은 특별한 음료수라는 인식이 한듯 하다.

일본에서 녹차는 ‘차’뿐만 아니라 푸딩, 케이크, 쿠키, 롤케이크, 사탕, 초콜렛, 비스킷,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류를 중심으로 많은 레시피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녹차 디저트의 종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당분간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다. 서양에서는 아직까지 잘보지 못하는 진귀한 것이라는 취급되고 있는 녹차이지만 일본에서는 100년 이상의 깊은 역사가 있다.

녹차의 역사와 철학

녹차의 역사와 철학

차가 탄생된 경위에는 많은 설이 전해져 오지만, 가장 넓게 전해져 오는 설은 신우(신농)의 설이다. 그는 고대중국의 신화상에 존재했다는 황제로 ‘농업’을 중국에 들여오고 ‘차’를 발견한 인물로 사람들은 믿고있다.

어느날, 신농은 물을 끓이고 있었다. 람이 불어서, 근처에 있던 잎들이 흘러들어와 물을 끓이고 있었던 솥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그 잎은 물의 색깔을 꾸고 독특한 향을 내기시작하였다. 신농은 궁금하여 그 맛을 보기 위해 물을 입에 옮겼더니 그 맛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수풀에서 날라온 잎이 차의 원료가 되는 찻잎이였다고 한다.

또한 신농은 차가 가지고 있는 숨은 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식물과 허브와 그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실험했다고 한다. 실제로 허브, 찻잎을 그가 씹었다고 하는 자료가 남아있다고한다. 차의 기원은 기원전 27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그 해에 신농이 차를 발견했다는 설이다. 과연 신농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건가 이런 실험을 실제로 행했냐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이 설이 정말이라면, ‘차’가 음료로써 사랑을 받아온 것은 4,0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중국에서 일본으로

현재의 녹차에 유래된 가루로써의 차의 형태는 서기 960년~1279년경 존재한 중국의 왕조송(王朝宋)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찻잎은 수확하면 증기로 데워서, 건조를 시키고 무거운 것을 위에 놓아서 분말상으로 만든다. 이런 방법을 쓰면 찻잎을 분말로써 용이하게 운반할수 있기 때문에 여행으로도, 운송으로도 중국 곳곳에 간단하게 운반할 수 있게되었다. 그 이유로는 분말상으로 된 차는 부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9세기가 되어서 불교학자 사이초(最澄)와 구카이(空海)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차의 품종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전해져 오는데 이것이 일본에 처음 차가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도사 에이타다(永忠)는 천황을위해 녹차를 제작하여 사가천황에게 직접 차를 냈다고 전해진다. 천황은 음료로써 차를 아주 좋아하여 그것을 계기로 현재의 칸사이지역에 대규모의 차밭을 만들었다. 또한 사가천황이 즐긴 차는 이 시점에서는 아직 마차는 아니였다고 한다.

녹차

녹차

마차의 탄생은 그 수백년후의 일이다. 일본의 많은 전통과 관습과 마찬가지로 마차의 루트도 불교가, 특히 선(禅, 참선,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 텐다이시절의 수도사 묘우안 에이사이(明菴栄西)는 1187년에 차와 선의 성서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에이사이는 먼저 분말상의 차의 컨셉트를 생각했다. 찻잎을 압축성형한 긴압차(緊圧茶)를 살펴보니 으깨어진 차의 잎으로 막혀있었다. 당시, 명상을 하기전에 차를 마시면 집중력을 지속시켜주는 작용이 있다고 전해져왔다. 중국에서는 이때 가루로 된 차에 대해서는 거의 단념했다고 전해지나 이 효과는 일본의 스님에 의해 중요시 여겨졌다고 한다.
에이사이는 여러 관점에서 왜 차가 인간의 신체에 좋은지, 차가 가져다 주는 이점, 차를 정확하게 마시는 법 등을 기록한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을 집필하였다. 그 책의 첫머리는 ‘차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가능성을 가지는 최고의 의학적요법이다’라고 쓰여져있다. 에이사이가 찻잎에 대해 얼마나 연구를 하고 있었는지는 첫머리 직후에 나오는 구절 ‘차가 음료로써 어떤 관점으로 인체에 효과를 가져오는지 왜 인기가 있는가’ 라는 부분을 읽으면 알수가 있다.
15세기까지해서 마차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린 계기가 된 선의 철학에 기초를 둔 다도가 탄생했다.

다성(茶聖) 센리큐(千利休)

다성(茶聖) 센리큐(千利休)

다도는 마차의 만드는법, 마시는법을 당시 장군의 다도가로써 섬기던 귀족이나 무사에게 까지 퍼트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존재가 센리큐이다. 젊은나이에 차, 선에 관한 원리에 대해 공부한 센리큐는 1579년 오다 부나가의 다도가가 되어서 부나가가 은 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겼다. 또, 다도 때에는, ‘색의 조합을 즐기고, 순수하게 차를 즐기는 마음을 키워,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평정속에 차를 즐길것’ 이라는 것을 널리 퍼트렸다고 한다.
센리큐의 다도에 관한 가르침과 철학은 세개의 유파, 오모테센케, 우라센케, 무샤코우지센케로 형성되었다. 이들의 생각은 센리큐의 유으로써 지금까지 계승되어 특히 다도의 종교적인 측면, 정신적인 측면을 잘 표현한 것들이다. 그의 다도 중에 가장 유명한 말로 ‘차그릇에 먼지, 때를 씻어낸다고 한들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느냐’ 라는게 전해져내려온다.

오늘의 녹차

오늘의 녹차

한 때, 다도는 마차를 즐기는 유일한 수단으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특권이였었다. 우여곡절의 시간이 지나서 나가타니 소우엔의 활약등에 힘입어 현재의 우지마차가 탄생, 마차를 여기까지 캐쥬얼한 존재로 꿈과 동시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다도의 전통을 잃는 일 없이 귀중한 찻잎을 일반시민에게도 널리 맛볼수 있게 해주었다.

※기사 게재 당시의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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