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 3년째 되던 해, 나는 그간 지내던 기숙사를 나와 혼자만의 집을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부푼 마음으로 아무리 부동산을 돌아보아도 조건에 맞는 집을 찾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방 보증금인 <시키킹>과 집주인에게 주는 사례금인 <레이킹>, 그리고 일본인 보증인을 세울 수 없으니 꼭 등록해야 한다는 보증회사 등록 비용 등등 예상치 못했던 금액이 추가되면서 초기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적은 장학금과 알바비로 생활하던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유학생에게 내 집 장만(?)은 정녕 꿈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부동산 직원이 보여준,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다다미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 집을 계약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첫 다다미방 생활. 그 날의 추억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1. 착한 월세
일본의 월세가 비싸다는 건 다들 알고있는 사실. 그중에서 도쿄 집세는 단연 최고다. 내가 부동산에 제시한 조건은 역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고, 1981년 이후 건축되어 새로운 내진기준이 적용된 철근콘크리트 집이었다. 도쿄 변두리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건을 충족시킨 집의 시세는 7~8만 엔 정도. 초기 비용만 최소 30만엔이 들었다. 그러나 다다미방의 집은 월세 5만엔 정도로, 이래저래 10만엔 정도 저렴하게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다다미방이 저렴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일본도 생활이 서양화되어 가면서 다다미방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80%가량이 플로링 바닥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리폼을 하지 않은 다다미방은 주변 시세보다 착한 가격에 나온다고. 다다미방이 처음이라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2만엔을 절약할 수 있다면야! 다다미방에 한 번쯤은 살아봐야 일본에서 유학했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덜컥 계약하고 말았다.
2. 청소와 환기를 꼼꼼히
가장 큰 걱정은 청소였다. 인터넷에 ‘다다미 청소법’이라고 검색해보니 검색 결과에 곰팡이, 진드기란 글자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다다미는 골풀로 만든 천연 소재여서 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고 진드기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 괜히 온몸이 근질근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글을 잘 읽어보니, 평소에 자주 청소를 하고 환기에만 신경을 쓴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같은 유학생 친구에게 얻은 청소기로 틈나는대로 먼지를 제거하고 마른 걸레로 다다미에 남은 먼지를 꼼꼼히 닦아 냈다. 그리고 꼭 하루에 한 시간씩 햇볕이 들 때 환기를 시켰다. 그럼에도 이사 후 한동안은 진드기가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에 떨었지만, 다행히 이 다다미방을 떠날 때까지 곰팡이와 진드기를 볼 일은 없었다.
3. 여름엔 쾌적하고 겨울엔 따뜻해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땀을 뻘뻘흘리며 들어선 방안에서는 시원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에어콘이 켜져 있나?” 싶어 리모콘을 확인하니 전원은 꺼진 상태. 혹시 다다미? 궁금증에 또다시 검색을 해보니 한 다다미 제조사 사이트에 다다미에는 습기를 흡수했다 방출하는 습도조절기능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다습해 푹푹 찌는 여름에는 다다미가 습기를 빨아당겨 실내습도를 낮춰준다고. 나는 다다미의 제습기능 덕분에 습도 높은 그 해의 여름을 비교적 쾌적하게 지낼 수 있었다.
반대로 겨울에는 일반 나무바닥보다 건조함이 덜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다다미는 주재료인 골풀의 텅 빈 속 안에 공기가 들어 있어서 단열기능까지 있다고 한다.
결국, 기숙사에 살 때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고, 난방되지 않는 차디찬 플로링 바닥(일명 목재바닥)을 걸을 때마다 느꼈던 발을 에는 듯한 냉기를 잊을 수 있었다.
4. 음료를 쏟으면 멘붕
다다미방 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 긴장이 풀려갈 즈음, 사건은 일어나고 말았다. 물도 아니고 무려 시럽이 듬뿍 든 아이스커피를 다다미 위에 쏟고 만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찾아온 멘붕! 시커멓게 물들어가는 다다미를 바라보며 머릿속에서는 부동산에 물어야 할 돈을 계산했다. 다다미 한 장만 물어내면 될까? 다다미 한 장엔 과연 얼마나 할까? 교체 비용도 내가 물어야 하는 거겠지? 상상의 나래와 함께 부풀어가는 배상 비용을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보증금을 깎아먹을 수 없었다. 난 아직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고!!
우선 마른 수건으로 커피를 닦아낸 후 인터넷에서 ‘다다미 커피 자국 없애는 법’을 검색했다. 커피를 쏟은 곳에 밀가루를 뿌려놓고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방법, 식초와 알코올을 1대1 비율로 섞어 자국이 생긴 곳에 뿌린 후 수건으로 닦아내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검색됐다. 하지만 다다미 초보자에게는 다들 너무 모험적인 방법들뿐. 나는 표백제를 묻힌 수건을 다다미에 올려놓고 수건을 두드리는, 제일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주의할 점은 표백제를 묻힌 수건의 물기를 꼭 짜내야 한다는 것. 수건을 바꿔가며 몇 번을 두드렸을까? 어느새 커피 자국은 꽤나 흐려져 있었다. 흔적을 아주 없앨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집을 나올 때 나는 다다미 비용을 물지는 않았다.
5. 마음이 편안해지는 골풀 향기
다다미방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다다미 재료인 골풀 향기이다. 이 향기 중에는 피톤치드라는 성분이 약 20%를 차지 하고 있는데, 이는 산림욕 효과가 있는 항균 물질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알파-시페론, 바닐린 등이 포함돼 있어 다다미방 냄새에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진정 효과가 있다고. 그래서인지 밖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다다미방에 누우면 마음이 포근해지면서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참고로 골풀 향기에는 마음을 안정시켜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어서 공부방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실제로 다다미방에서 생활하면서 내 대학교 성적이 올랐는지는...음... 모두의 상상에 맡겨두겠다.
2년 후 나는 조금 더 월세를 절약하고자 친구와 같이 살기 위해 이 다다미 집을 떠나게 됐지만, 문득문득 이 집이 떠오르곤 한다. 일본에 산다는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었던 다다미방. 언젠가는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은, 좋은 추억이 남은 곳이다. 일본에서의 생활을 앞두고 있다면 한 번쯤은 다다미방에서 생활해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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