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남편과 국제결혼을 하고 보니 우리 집 안에서는 오만가지 것이 다 섞인다. 말을 할 때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이고, 책장에는 한국 책과 일본 책이 섞여 있고, 방 안에서 한국 음악과 일본 음악이 동시에 울려 퍼지기도 한다. 밥상에도 매일 한국 음식과 일본 음식이 동시에 오른다.
모든 게 뒤죽박죽 섞여 있는 우리 집. 돼지 갈비찜이 니쿠자가라고 불리고 모즈쿠가 오이 냉국으로 변신하는 우리 집 저녁 밥상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음식과 식재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월요일> 한국의 “니쿠자가” 돼지갈비찜
일본인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 1, 2위를 다투는 돼지 갈비찜. 푹 고아 양념 맛이 깊게 밴 고기는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 단맛이 감돈다.
남편은 돼지 갈비찜을 자기 부르기 편한 대로 “니쿠자가”라고 부른다. 왜냐고 물었더니 니쿠(고기)와 자가이모(감자)가 들었으니 니쿠자가가 아니냐고. 니쿠자가는 이름 그대로 고기와 감자를 설탕과 맛술을 넣은 간장에 넣고 졸인 일본 요리인데, 남편 말을 듣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러네, 돼지 갈비찜도 니쿠자가네! 들어가는 재료와 양념이 비슷하다 보니 맛도 얼추 비슷하다.
니쿠자가는 일본 가정에서 흔히 먹는 반찬으로, 일본인이 좋아하는 반찬 순위에서 언제나 상위에 오르는 음식이다. 익숙한 맛이라 그런지 돼지갈비찜도 일본인의 입맛에 딱 맞는가 보다. 이처럼 누구나 거부감 없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도 사실 돼지 갈비찜은 일본에서 부침개나 떡볶이와 같은 한국 음식처럼 일본에서 잘 알려진 음식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인 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때 돼지 갈비찜을 내어놓으면 다들 신기해하며 아주 좋아한다.
곁들인 반찬은 풋콩, 히야얏코(두부 요리), 시금치 깨 무침, 그리고 한국풍 요리라며 슈퍼에 팔던 가자미 지느러미 고추장 무침. 가자미 지느러미가 쫄깃쫄깃해서 명랑젓처럼 참 맛있었다. 메인 요리는 한국 음식에 반찬은 일본 음식, 이런 식으로 우리 집 밥상에는 자주 한일 음식이 한 상에 오른다.
<화요일> 남편의 추억요리 채소볶음
일을 조금 일찍 마치고 온 남편이 만든 저녁 밥상.
메인 요리는 남편이 즐겨 해 먹는 요리 채소볶음이다. 남편은 만들 수 있는 요리가 그리 많지 않아서 자취할 때 혼자 집에서 밥을 해 먹을 때면 거의 채소볶음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따라서 채소볶음은 남편의 추억이 담긴 요리다.
재료로는 돼지고기와 양파, 무, 마늘종, 당근, 그리고 애호박과 비슷한 주키니를 사용했다. 일본 슈퍼에서는 애호박을 보기가 어려운데, 한국에서 처음 애호박전을 먹고 애호박과 사랑에 빠진 남편은 그나마 가장 비슷한 주키니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곤 한다. 애호박처럼 주키니도 구워서도 먹고 볶아서도 먹고 튀겨서도 먹고 전으로도 먹을 수 있어 아주 활용도가 높은 재료다.
그런데 이 주키니도 일본 슈퍼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최근 10년 사이의 일로 지금은 어느 슈퍼에서나 주키니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주키니를 주로 이탈리아 요리에 사용해 왔다 보니, 자매 채소인 애호박이 한국에서 서민적인 식재료로 인식되는 것과 달리 주키니는 일본에서 세련된 식재료로 인식되고 있다.
있는 장소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애호박의 신세!
채소볶음에 곁들인 연어구이도 생선을 처음 구워봤다는 남편의 작품이다. 구워놓고 나서 어찌나 뿌듯해하던지. 작은 종지에 담긴 건 슈퍼에서 사 온 우무묵이다. 어릴 때 엄마가 자주 만들어준 우무묵의 맛이 그리울 때면 이렇게 한 번씩 슈퍼에서 사다 먹는다.
<수요일> 먹고 남은 채소볶음이 오키나와 향토 요리 소면참푸루로 변신
어제 먹고 남은 채소볶음에 오키나와의 전통 식재료로, 쓴 맛이 나 입맛을 돋우어주는 고야를 추가해 소면 참푸루를 만들었다.
참푸루는 오키나와에서 남은 반찬을 다 넣고 볶아먹기 시작하면서 정착된 향토요리라고 한다.
요즘은 주로 두부와 채소, 돼지고기 등을 넣어 볶아 먹는다. 참푸루에 소면을 넣어 소면 참푸루라고 부르는 것처럼, 참푸루는 요리에 무슨 재료를 넣었냐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고야를 넣으면 ‘고야 참푸루’가, 콩나물을 넣으면 ‘마미나(콩나물) 참푸루’가 되는 식이다.
소면 참푸루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요리다. 이 요리를 처음 알게 된 건 일본 작가 나카지마 교코의 소설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를 통해서였다. 이혼 후 오랜만에 오키나와에서 재회한 두 남녀가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여자가 먹은 음식이 소면 참푸루였던 것이다. 소설에 나온 음식은 등장인물의 심정을 그 어떤 문장보다 잘 전해주곤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이 여자는 어떤 마음으로 소민참푸루를 먹었을까, 하고 생각하며 소면 참푸루를 자주 만들어 먹곤 했다. 그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음식이 된 것이다.
소면 참푸루를 먹을 때마다 계속 엇갈리기만 했던 두 사람이 결혼 후에 너무너무 싫었던 부분까지도 결혼 전엔 좋았노라며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이 장면이 떠올라 괜스레 가슴 한구석이 찡해진다.
곁들인 반찬은 고야와 산지가 같은 오키나와 산 해초 모즈쿠와 남편이 좋아하는 한국 요리 마늘장아찌다. 슈퍼에서 사 온 모즈쿠는 식초와 설탕으로 간이 되어 있어 새콤달콤한 맛이었다.
<목요일>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별미 가쓰오타타키
목요일의 메인 요리는 고치현의 향토요리 가쓰오타타키다.
가쓰오타타키는 다랑어를 통째로 짚불에 쬐어 다랑어에 향을 더하며 겉만 살짝 익힌 요리다.
짚이 없을 때는 소나무를 쓴다고 하는 데, 그 이유는 고치에서 벼농사를 많이 짓고 소나무가 많아서라고 한다. 짚의 향이 밴 바깥 부분은 고소하고 회 상태인 안쪽 부분은 입안에서 스르륵 녹는다. 타타키는 두드림이라는 뜻의 일본어인데, 이 요리를 가쓰오타타키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랑어를 구운 후에 두툼하게 잘라 그 위에 소금을 뿌리고 소금이 잘 스미게끔 톡톡 두드려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쓰오타타키에는 보통 파, 푸른 차조기, 양하, 마늘 등의 야쿠미(薬味, 향료)를 올려 먹는 데 기분에 따라 맛을 바꿔가며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처럼 가쓰오타타키는 한 요리로 여러가지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일본의 별미다.
보통은 큰 접시에 가쓰오타타키를 한가득 담아 여러 사람이 함께 먹지만, 이날은 돈부리로 만들어보았다. 이렇게 먹으면 밥에까지 가쓰오타타키의 향이 배어 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국은 나메코라는 미끈미끈한 버섯을 넣은 된장 국이다. 나메코는 미끄덩한 식감이 재미있어서 자주 먹는 식재료인데, 졸여먹어도 맛있다.
반찬은 어릴 때 자주 먹은 동래파전이 갑자기 생각나서 급히 만들어 본 파전과 파전을 만들고 남은 반죽으로 만든 밀전병. 남편이 넉넉하게 만들어 고야를 추가한 채소볶음을 밀전병에 싸서 먹으니 밀전병이 고야의 쓴맛을 잡아줘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조만간 제대로 밀전병을 한 번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밀전병에 김치까지 넣어 먹으면 정말 맛있을 것 같다.
<금요일>곧 비빔밥이 될 나물과 고등어 구이
이 날은 고등어를 굽고, 밑반찬으로 각종 나물과 사쓰마아게(さつま揚げ)로 만든 어묵볶음, 계란찜을 만들어 먹었다. 나는 이렇게 나물을 만든 날에는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처음부터 비빔밥으로 내놓지 않은 것은, 남편이 매운 것을 전혀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고등어 된장조림을 만들면서 비린내를 잡으려고 아주 소량의 고추장을 넣었는데, 남편은 왠지 모르겠지만 고등어 된장조림이 굉장히 맵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있는 것이었다.
일본 사람들 중에는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비빔밥을 먹을 때도 고추장을 따로 내는 게 좋다. 그래서 일본에서 한국 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시키면 나물만 올려져 밥에 있고 고추장이 들어있지 않다. 직원이 따로 가져다준 고추장을 스스로 원하는 양만큼 각자 넣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
작은 종지에 든 동글동글한 것은 푸른 차조기가 든 쓰쿠네(닭고기를 동그랗게 빚어 기름에 튀긴 것)다. 푸른 차조기는 일본에서 아주 흔한 식재료인데, 나는 일본에 와서 차조기를 깻잎인 줄 알고 먹었다가 그 오묘한 맛이 너무 놀란 기억이 있다. 그때 일본에는 깻잎을 잘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차조기와 깻잎은 모두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로 같은 종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깻잎만 주로 먹고, 일본에서는 차조기만 즐겨 먹는 것이 신기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궁금해 찾아보니 들깨는 잎을 많이 따면 씨를 맺지 않기 때문에 깻잎을 수확할 들깨와 씨를 수확할 들깨를 구분해 재배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름을 더 많이 사용하는 일본에서는 깻잎을 재배하는 농가가 적고, 따라서 수요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왜 푸른 차조기를 안 먹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들깨의 잎은 쌈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만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한국 사람들 중에는 차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일본 사람들 중에는 깻잎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향이 독특해서”라고. 자매 식재료 격인 깻잎과 차조기가 한국과 일본에서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신기했다.
<토요일> 가라아게 아닌 도리텐
오랜만에 도리텐을 만들어 보았다. 도리텐은 일본 서쪽 지역인 오이타의 명물 닭 요리다.
오이타가 고향인 남편이 연애할 때 처음으로 만들어준 요리가 이 도리텐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정감이 가는 요리다. 처음 먹었을 때 가라아게랑 뭐가 다른가 했는데 알고 보니 가라아게(닭튀김)와 도리텐은 비슷하지만 다른 요리였다.
가라아게는 닭에 옷을 입힐 때 물에 개지 않은 밀가루를 묻혀 튀긴다. 한편 도리텐은 밀가루를 물에 개서 닭에 옷을 입힌다. 그리고 가라아게는 주로 소금이나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반면에 도리텐은 쓰유에 찍어 먹는다. 왜냐면 도리텐은 덴뿌라로 분류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라아게와 도리텐는 이렇게 요리 방법이 살짝 다를 뿐인데 전혀 다른 음식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참 재미있다.
도리텐의 발상지는 온천 여행지로 유명한 벳푸시다. 20세기 초에 벳푸시에 있던 레스토랑 요리사들이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저렴하고 맛있는 고기 요리로서 고안해낸 요리가 도리텐인 것이다. 이후 옆 지역인 오이타시로 확산됐다가 전후에 오이타현 전역으로 퍼져 오이타현 사람들의 ‘소울푸드’가 됐다고.
비슷한 이야기로,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건너온 한 요리사가 적은 돈으로 노동자들의 배를 불릴 수 있도록 만든 짜장면이 한국의 ‘소울푸드’ 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많은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고 싶다는 요리사들의 마음이 ‘소울푸드’를 만들어내는 듯하다.
잠시 샛길로 빠진 이야기를 다시 되돌려 밥상 이야기를 하자면, 반찬으로는 도리텐을 튀기고 남은 기름으로 아게나쓰(가지튀김)도 만들었다. 그리고 국은 오이냉국이다. 수요일에 새콤달콤한 모즈쿠를 먹다 여기에 오이와 물을 넣으면 영락없는 오이냉국이겠다 싶어 만들어 본 것이다. 이제 모즈쿠만 있으면 10초 안에 오이냉국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올여름에는 모즈쿠에게 신세를 좀 져야겠다. 도리텐과 함께 먹으니 기름의 텁텁함을 오이냉국이 깨끗이 없애줬다. 한국의 오이냉국과 일본의 도리텐, 서로 출신이 다른 음식이지만 궁합은 좋은 듯하다.
<일요일> 일본의 국민 요리 카레
일요일에는 남편이 만든 카레를 먹었다.
카레는 일본의 국민 요리다. 인도에서 영국을 경유해 19세기 말에 일본으로 건너온 카레는 일본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룬다.
카레빵, 카레 우동, 카레 고로킷 등등 다양한 요리에 접목되면서 카레는 그렇게 일본의 국민 요리가 되었다. 그 인기에 비례해 거리에는 참 많은 카레 요리집이 있다. 인도식 카레집, 서양식 카레집, 일본식 카레집 등등 너무 종류가 많아서 일주일 내내 카레만 먹는다해도 질리지 않는다.
카레를 좋아하는 나와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여러 카레 맛집을 돌아다녔는데, 남편이 만든 카레맛은 그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단연 으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여러 맛집이 떠올라 양심에 찔리므로 상위에 속한다고만 말해두겠다.
남편은, 카레란 자고로 채소도 듬뿍듬뿍 넣고 고기도 듬뿍듬뿍 넣은 후에 정성스레 잘 졸여야 한다며 마치 사골을 우리듯 시간과 정성을 들여 카레를 졸인다. 그러면 숟가락으로 밥과 카레를 떴을 때 카레가 아래로 흐르지 않고 숟가락 위에 딱 고정이 될 정도로 점성이 있는 카레가 된다. 아마 흘러내리지 않아 많은 양의 카레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남편의 카레가 맛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런 점성 있는 카레는 일본식이다. 카레의 원조인 인도 카레는 되지 않고 물처럼 부드럽다. 그 카레가 영국을 거쳐 일본에 들어오면서 밀가루가 추가된 카레루(roux)가 들어와 점성이 있는 일본의 카레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참, 불을 끄기 5분 전에 우유를 넣는 것이 남편의 비법이라고 한다. 카레에 곁들인 반찬은 양파장아찌다.
일본에서는 카레를 먹을 때 단무지나 후쿠진즈케(福神漬)라는 각종 채소 절임을 곁들여 먹는데, 오늘은 특별히 한국식으로 양파 짱아찌를 담아보았다. 햇양파를 사다가 좀 더 담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맛이었다.
별것 없는 밥상인데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궁금한 것이 참 많아진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 왜 깻잎은 한국에서만 먹는 것일까? 왜 오키나와에서는 소면을 볶아먹는 것일까? 왜 일본의 어묵 사쓰마아게는 동그랗고 한국 어묵은 사각진 걸까? 왜 일본에서는 계란말이에 설탕은 넣는 것일까?
이렇게 보니 밥상은 참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듯하다. 앞으로는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을 더 유심히 지켜보아야겠다.
일본인 남편,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번역가. 일본 거주 13년차. 옮긴 작품으로는 마쓰다 아오코의 단편소설 「마가렛은 심는다」, 나카지마 교코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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