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시아 문화권으로 문법적으로 어순이 비슷하거나 높임말과 반말의 구분이 있는 점 등, 언어 습관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와 같은 개념으로 높임말과 반말을 구분하여 쓸까?
참고로 필자는 일본에서 8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다. 어느 정도 일본 생활에 적응을 하고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됐을 무렵, 우리와는 조금은 다른 언어 습관에 당황한 기억들이 있다. 특히 높임말과 반말의 개념 부분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필자의 일본인 지인 중에서 연령별 각 1명 씩(20대, 30대, 40대, 50대/남녀 비율 반반)을 뽑아 총 4명에게 반말에 관한 앙케이트 조사를 실시하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그들은 반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직장 상사나 선배에게 반말을 한 적이 있다? 있다면 그 이유는?
‘직장 내에서 일할 때는 깍듯이 높임말을 쓰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반말을 섞어가며 쓰는 편이에요. 특히나 회식 자리에서는 반말 비율이 높은 것 같아요. 참고로 저는 회사에 입사한 지 15년이 다 되어가요. 그러다 보니 직장 상사들과 미운정 고운정도 들었고 제가 여자라서 그런지 사적인 자리에서는 반말을 해도 잘 받아주세요. 딱히 반말을 쓰는 이유를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회식 자리 같은 곳에서 높임말을 쓰면 뭔가 어색하고 분위기도 다운되고 그러잖아요. 즐기는 자리인 만큼 예의를 갖춘 반말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R 씨/오사카/여성/39세)
‘일할 때 한 번도 반말을 써 본적도 없고 써 볼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저는 회식 자리에서도 상사에게 딱 한 번, 반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음… 저는 회사에서도 가장 어리고 막내 신입사원이다 보니 장소나 상황을 불문하고 반말을 쓰는 게 부담스러워요. 제 바로 위도 저하고 10살 차이가 나거든요…’ (H 씨/도쿄/여성/21세)
‘저는 비교적 회사에서 지위가 높은 편이라 반말을 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 또한 제 상사에게는 높임말을 써요. 하지만 술자리나 회식자리에서는 반말을 섞어 쓰는 것도 사실입니다. 술자리에서까지 높임말을 쓰면 술맛이 안 나잖아요(웃음). 물론 상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차원의 가벼운 반말 만을 사용합니다.’ (C 씨/가나가와/남성/58세)
‘직업 특성상 저는 일할 때도 사적인 자리에서도 대부분 반말입니다. 처음부터 반말을 쓴 것은 아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반말은 어느새 필수가 되었어요. 반대로 높임말을 쓰면 친해지기 어려워서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도 없고 형식적인 관계가 되는 것 같아요.’ (Y 씨/나가노/남성/45세)
직장 내에서 높임말을 쓰는 것은 일본도 한국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사적인 자리나 회식자리에서 반말을 쓰는 비율은 한국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친근한 분위기를 통해 직장 내외, 상사와의 인간관계를 충실히 이어가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부레이코’ 라 하여 직장에서 상하 관계를 일시적으로 무시하고 회식자리 등에서 편하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기본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부모에게 반말을 한 적이 있다? 있다면 그 이유는?
‘가끔 장난으로 높임말을 쓸 때도 있지만 부모님에게 높임말을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항상 반말로 대화해요. 부모님인데 높임말을 쓰는 것 자체가 반대로 이상한 것 아닌가요? 높임말을 쓴다는 것은 상대를 잘 모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편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의미인데… 아무튼 부모님에게는 항상 반말을 합니다.’ (H 씨/도쿄/여성/21세)
‘글쌔요… 제 나이 58세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에게는 반말을 사용합니다. 쇼와시대 초기나 그 이전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부모님에게 높임말을 쓰면 왠지 남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네요. (C 씨/가나가와/남성/58세)
‘저는 가끔 화날 때, 부모님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높임말을 씁니다(웃음). 그럼 부모님도 바로 제가 화났다는 것을 아시죠. 반말을 한다고 해서 부모를 향한 존경과 배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 (Y 씨/나가노/남성/45세)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보면 부모에게 높임말을 쓰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정말 한국 사람들은 부모를 극진히 대하는 것 같아 본 받아야 한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조금 슬프기도 하네요. 저는 부모님과 친구처럼 지내요. 당연히 높임말을 써 본적도 없고 써야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네요. 다른 일본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R 씨/오사카/여성/39세)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부모에게 반말을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설문에 응한 4명 모두가 부모에게 반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필자가 아는 일본인들 중에는 부모에게 높임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일본인들 중에는 그 집안에 따라 높임말을 쓰는 사람들도 있는 셈이다. 공통적 의견으로는 ‘반말=무례’ 가 아닌 ‘반말=친근감’ 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
외국인 지인에게 반말을 한 적이 있다? 있다면 그 이유는?
‘비즈니스로 알게 된 외국인 지인이 있는데 적절히 높임말과 반말을 섞어 사용합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를 담아 높임말을 쓰다가도 너무 분위기가 딱딱하다 싶으면 반말로 농담을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 올리죠. ’ (C 씨/가나가와/남성/58세)
‘예전에 아는 한국인 분에게 반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반말을 한 것이 되려 역효과를 초래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인분들에게는 반말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그 한국 분 저보다 6살 많으신 분이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높임말을 쓴다고 하죠? 그 외에 중국인 및 대만인 지인들에게는 편하게 반말로 대화를 해요. ’ (R 씨/오사카/여성/39세)
‘저는 아쉽게도 외국인 지인이 P 씨(필자) 말고는 없어요(웃음). 그래서 높임말을 쓴다, 반말을 쓴다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 외국인 지인이 생긴다면 반말을 할 것 같아요. 친구사이가 아닌 그냥 아는 지인이라면 굳이 반말을 쓸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높임말은 배려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더욱 벌리고 마음의 벽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H 씨/도쿄/여성/21세)
‘일로 알게 된 외국인 지인이 있어요. 지금은 친구네요(웃음). 처음에는 높임말을 쓰다가 술 한잔 한 이후로 바로 반말로 태세를 전환했습니다(웃음). 높임말로 대화할 때는 사적으로 만나도 되는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서로 반말로 대화를 하고 나서부터 그 사람의 성품, 가치관 등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반말로 편하게 대화하는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
이 질문 또한 반말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4명 모두 대답하였고 공통된 의견으로는 서로를 더욱 자세히 알아가고 친해지기 위하여 반말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반말은 친근감의 표시!
사실 일본도 한국 못지 않게 서열을 중요시 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 서열이라는 것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인생의 선배로서 존중하고 반대로 존중 받기도 하며 예의를 갖추어 대하기는 하지만 나이가 서열을 뜻하지 않듯이 일본의 직장 생활을 들여다 보면 나이 어린 상사가 나이가 많은 부하 직원에게 반말로 대하는 것은 흔하게 있는 일이다.
실제 필자도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적게는 3살 많게는 10살 어린 선배에게 반말로 일을 지시 받거나 훈계를 들은 경험이 적지 않다. 반말의 개념을 나이라는 잣대로 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느 한 분야의 경력자가 지시하는 말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기분 나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일본인이 생각하는 반말이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하는 말도 아닌, 항상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시하는 말투도 아닌,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친근한 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와 비슷한 듯 하면서 다른 일본의 반말 문화. 일본인 누군가가 반말로 당신에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신호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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